내가 그녀를 만난 건 십 년 전이다. 주인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떨어진 시장통.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내 인생에서 시장통은 생각조차 안 해 보았기에 뜬금없이 밀려온 이 시장통은 황당함과 서러움의 장소였다. 먹고사는 일은 제쳐 둘 수 없기에 두 눈 부릅뜨고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녀를 만났다.
낯선 내게 귀찮을 만큼 친근했던 그녀, 처음 마주친 나에게 자기 손을 내어 준 그녀. 난 그런 그녀가 막 싫진 않았다.
수미 씨는 얼굴이 노란 편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손과 눈 주변은 검은 편이라 좀 피곤해 보인다. 나중에 안 거지만 맨날 물감을 묻히고 다닌 거였다. 사람들은 수미 씨와 내가 닮았단다. 어디가 닮았냐고 수미 씨가 물으니 눈이 닮았단다. 그러고 보니 수미 씨 눈이 참 예쁘다. 그 예쁘던 눈에도 주름이 생겼다. 물론 내 눈가에도 무지막지한 까치발들이 쫘악 퍼져있다. 수미 씨는 보톡스를 맞으면 좀 탱탱해지려나 하고 병원을 찾는다. 곱게 안 늙고 발악하며 젊어지려 용쓰는 것처럼 보인다. 난 눈치가 빠르다. 수미 씨가 시술이라도 받고 온 날이면 그녀가 애처로워 보인다. 그냥 자연스럽게 곱게 늙어가면 좋으련만... 수미 씨는 새치가 늘어나면 바로바로 염색한다. 거울도 잘 보고, 특히 옷엔 관심이 많다. 가끔 예쁜 목걸이를 내게 선물해 줄 참이면, 나는 바로 풀어버리며 귀찮게 한다는 표정으로 역정을 낸다. 그럴 땐 수미 씨는 섭섭해하기도 한다.
수미 씨를 십 년 넘게 보아 왔지만 매년 몸무게가 일정하게 1킬로씩 늘어난다. 식탐이 많아 자기관리가 잘 안된다. 그녀는 기상 후 늘 바로 아침을 먹는다. 일어나자마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신기하다. 가끔 과식을 하고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뀔 때면, 그건 좀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수미 씨는 커피를 즐긴다. 가끔 한국에서 들고 온 맥심 믹스커피를 타 마실 때면, 난 코를 벌름 거리며 한 잔 주면 안 되겠냐는 눈치를 보낸다. 그 당시 한국 제품은 귀했던지라 수미 씨는 이런 나를 못 본 척하고 잠시 자리를 뜬다. 그럼 나는 커피를 슬쩍 마셔놓고 아닌 척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수미 씨는 커피 마니아인가 보다. 최근에는 커피 머신을 사서 수시로 아메리카노를 뽑아 식어 빠질 때까지 책상에 두더니, 때로는 원두를 한 움큼 쥐고 향기를 음미하다 질질 흘리기도 한다. 나는 수미 씨가 남긴 커피나 흘린 원두를 좋아한다. 사실 그녀 몰래 먹은 적도 많다.
수미 씨는 늘 내 곁을 지킨다. 내가 좋아 내 곁에 머무는지 나를 외로움 방지, 하소연 풀이용으로 두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수미 씨가 참 좋다. 외롭고 낯설던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반기던 처음 그날.
수미다, 오래오래 살아라.
우리 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