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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Feb 24. 2022

아이...그 누군가의 아이

이주만에 남편이 왔다. 

아빠와 놀기를 목놓아 기다리던 아이는 현관문 소리에 두 눈 똥그래지며 '아빠'를 외친다. 덥석 안으려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소독약 세례에  손 씻기  옷 갈아입기 등등을 거친 후 부녀상봉은 진하게 시작된다. 찰떡같이 아빠품에 안긴 아이의 표정은 이주 동안 집에서 숙제해라, 수업 집중 해 들어라, 정리해라. 운동해라를 외치던 엄마로부터 보호해 줄 방패막을 맞은 터라 한 껏 기가 살았다. 저녁 한 상 배부르게 먹고, 숨어봤자 몇 초도 안되어 찾아내는 좁은 집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평소 못하던 게임도 하고 신나는 예능도 본다. 늦은 밤 눈꺼풀이 실실 감기면 엄마 아빠 사이에 쏙 파고들어 와 찰거머리처럼 붙어 쌔근쌔근 잠든 아이가 사랑스럽다. 

 오늘은 애마인 오토바이를 탄다. 

심각해진 코로나로 집에만 박혀있던 내가 답답함을 호소하며, 동네 투어를 신청했다.  한동안 타지 않고 주차장 구석 세워뒀더니 먼지만 소복이 앉혀, 아이는 자기 옷에 먼지 묻어 싫다며 안 탈 거라 뻐튕긴다. 마침 들고 있던 물티슈 한 장으로 아이가 앉을자리만 닦아낸다. 혹시나 위험할 수도 있기에 좋은 놈으로다가 요리조리 따저 산 헬맷을 아이 머리에 씌운다. 우선 동네 투어는 둘째치고 세차부터 하러 간다. 뿌아앙~아이는 신나 하고 우리는 아이의 신남에 덩달아 웃는다.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선 집 근처 세차장에서 오토바이 세차를 맡긴다. 오랫동안 타지 않아 여기저기 손도 볼 겸 남편은 주인장에게 이런저런 말을 한다. 그사이 아이와 난 세차장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 본다.  금붙이를 여기저기 두르고, 살집이 제법 있는 주인이 누군가를 부른다. 색 바랜 구김 심한 모자를 눌러쓰고 대충 걸친 기름때 찐 옷을 입은 작은 키의 남자가 우리 오토바이에 비누칠을 듬뿍한다. 움직임이 영 날쌔지 않다. 대충대충 하는 듯도 하다. 순간 그의 손이 눈에 들어온다. 어른 손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뽀얀듯하다. 손을 따라 올라간 얼굴을 보니 아직 애다. 많아봤자 중1 정도의 어린 남자아이다. 남자아이는 자신에게 눈을 떼지 않는 나와 내 품에 안겨있는 다 큰 내 딸을 슬금 곁눈질로 보는듯하다.

 주인장과 말을 마친 남편이 내 곁으로 왔다. 나는 남편에게 저기 세차하는 분, 아직 앤 거 같지 않나 했더니  남편 눈에도 그리보인단다. 아직 베트남엔 대충 초등학교 몇 년 보냈다가 기술이나 배우고 돈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태라고 저렇게 어린 나이에 일 시작하는 애들이  길거리에 널렸다. 고사리손으로 커피를 팔고, 식당에 음식물을 치우고, 자기 몸집보다 큰 오토바이를 낑낑대며 닦고, 갖난아이를 들쳐업고 구걸하는 아이들... 길거리의 아이들.

 세차를 끝낸 아이가 주인을 부른다. 

남편은 주인장에게 세차비를 내고 돌아서며, 아이의 손에 돈을 쥐어준다. 아이는 주인이 볼세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자신의 선택이라고는 일도 없이 길거리에 내놓아진 아이들, 깨끗해진 오토바이 위에 올라앉아 아빠와 히죽거리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세차장 소년의 눈빛이 어른인 나를 죄스럽게  만드는 주말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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