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함께 가자 했다. 초등 입학식에 따라가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설레기도 하며 걱정 되는, 잠시 나는 남편의 엄마가 되었다. 긴장하는 남편의 손을 잡아주고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세상 공손한 모습으로 남편은 '환경 공무직 지원서'를 제출했다.
몇 주 전부터 남편은 구청에 낼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이것저것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서류들은 꽤 있었고, 1차 시험에 제출할 서류부터 까다로운 항목들이 많았다.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추가 점수가 발생되는데, 우리 집은 단출해도 너무 단출해 키우는 강아지라도 추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나이가 마흔 중반인 것은 그나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임을 보고, 나이 듦이 좋을 때도 있다며 실없이 웃었다.
며칠째 컴퓨터 화면에 떠 있던 이력서가 완성되었는지 한 번 봐 줄 수 있느냐 물었다. 그간의 경력들이야 나열하면 끝날 일이고 문제는 자기소개서와 지원 동기였다. 남편이 쓴 글은 흔히 인터넷에 떠도는 저는 몇째의 누구로 자라 성격이 어떠하고 매사 적극적이며 등으로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흔한 이력서는 읽자마자 내팽개치게 만든다는 마누라의 구시렁거림을 안 듣는 척 듣더니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 적은 그간 휴일 없이 일만 했던 시절과 청소부에 대해 편견을 가진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글은 나의 눈물샘을 툭하고 건드렸다. 이쯤 쓰면 충분하다 치켜세우는 나의 말에 기가 산 남편은 어깨 으쓱하며 프린트한 이력서를 애지중지 제출할 서류들 사이 모셔두었다.
이후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1종 대형면허증을 따는 일이 급선무였다. 단 몇 점이라도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도움 되기에 당장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학원 등록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2주 안에 꼭 따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 다른 걱정은 제쳐두고 무조건 가야만 했다. 평소 운전은 곧잘 하던 남편이기도 하거니와 수월히 운전연습 중이라는 말에 당연히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라 여겼건만 온 가족 출동한 첫 시험에서 출발 버저가 울리자마자 서있기만 하는 아빠를 보고, 왜 저러고 있냐는 아이의 질문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눈 감고도 딸 수 있다 장담하던 남편은 온갖 잘난척하더니 꼴좋다는 두 모녀의 잔소리를 한동안 뒤통수로 받아내야 했다. 바로 며칠 뒤 있는 재시험에는 쥐 죽은 듯 혼자 가더니 개선장군처럼 으스대며 합격증을 들고 오는 모습에 모녀는 박수로 기를 살려주었다.
지원서나 면허증을 능가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1차 체력 테스트를 준비해야 했다. 오래전 뉴스에서 쌀가마니를 지고 나르며 치르는 체력 테스트를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남편에게 도움 될까 싶어 쌀가마니 무게 지지않는 마누라 들고 운동하라 권하니 콧방귀만 뀐다. 요즘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하냐며 혀를 차던 남편은 체력시험 전문 학원도 있다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백수 상황에 준비하는 시험이라 생활비로 나가는 돈에 면허증 딴 다 쓴 돈까지 합치니 금전적 부담이 밀려와 한 숨쉬는 나를 보더니 그동안 해 온 운동도 있고, 체력테스트만큼은 스스로 준비해 보겠다 한다. 새벽에는 강아지들과 달리기를 하며 쓰레기를 줍고, 오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온 거리를 휘젓고 다닌 후 닭 가슴살과 야채로 배를 채운 뒤 집에서 차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하는 '국민체력 100'에 가서 수시로 무료 체력 인증과 체력시험에 나오는 각종 테스트 점수 관리에 들어갔다. 술과 야식에 늘어난 살들은 몇 주 사이 5킬로가 사라졌고, 악력과 제자리멀리뛰기 등의 좋지 않던 점수들도 남편이 공들인 만큼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 은근 바라던 결과를 기대하게 했다.
체력테스트 일정이 잡혔고, 시간장소를 알려주는 문자가 울렸다. 남편은 쉼호흡을 하더니 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고 외쳤다. 평소 같음 웃고 있을 두 모녀는 비장한 그의 모습에 간절한 박수만 보냈다. 드디어! 내일! 1차 결전의 날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