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은 괴력을 부른다.

1장 겨울

by 수미

몸이 열 일하는 날이다. 늘어지게 퍼져있어야 할 주말의 한가로움조차 누리지 말라는 듯 토요일 오후에 배정된 체력 시험은 남편의 긴장을 한껏 끌어올린다. 음식 남기는 건 죄악이라 가르친 집안환경서 자라온 덕에 배가 미어터져도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들이키던 남편의 식성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날렵해 보이는 몸을 만들기 위해 소식으로 바뀌었고, 밤마다 들이키던 맥주에 걸맞은 기름직 야식들도 끊어냈다. 먹는 걸 낙으로 아는 양반이 저리도 절실히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집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긴 났구나 싶었다. 코로나 시국에 멀쩡한 회사도 문을 닫는 요즘, 취직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동네 아이들 모아 과외하던 나 역시 새로 튼 보금자리에 적응도 안되었거니와 친정어머니까지 하늘로 보낸 상황에 돈 벌 궁리 하나 않고 넋이 나가 있으니, 남편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절박함을 무기로 괴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시험 치는 날은 왜 이리 날씨가 매서운지, 아직 한겨울 닥치려면 며칠은 남았구먼 11월 중순부터 몰아치는 바람은 입시생이고, 취준생이고 가리지 않고 고생하는 김에 더 하라는 듯 칼바람만 내리꽂는다. 이런 날씨에 내의에, 두둑한 파카에, 있는 옷은 다 챙겨 입고 가고 싶으나, 날렵한 몸으로 시험 보려면 옷도 원대로 챙겨 입지 못한다. 체육복에 점퍼 하나 걸치고 나선 남편은 시험장까지 뛰어가겠다 한다. 뭔 체력 소모하려고 그리 뛰어가냐니 시험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서 시험장에서 긴장감을 푸는 게 좋을듯하다 한다. 날 추운데 뭔 짓이냐며 잔소리 한바닥 깔고 싶지만 날이 날인지라 당신 원하는 대로 하라 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뻔한 응원을 해주며 시험장으로 보냈다.

남편이 돌아왔다. 저놈의 알 수 없는 표정은 잘 친 건지 아닌지 영 감을 잡을 수 없다. 땀에 절어 있는 남편이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뜨끈한 차 한 잔 내며 물어본다. 남편의 대답은 알 수 없다 이다. 시험장에 가니 코로나의 전염성으로 단체 시험 보는 것이 아닌 열댓 명씩 팀을 이뤄 시간차를 두고 시험을 봤다 한다. 경쟁률이 높아 이틀간 나누어 체력시험을 본다고 듣긴 했는데, 먼저 시험 치른 앞 팀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기가 팍 죽었다 한다. 한국 남자 평균 키라 우기는 남편은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30대의 체력 좋은 남자들이 무더기로 응시한 걸 보고 사기가 절로 꺾여버렸단다.

사기 꺽여 들어선 시험장에서 하필이면 첫번째 테스트가 폐활량이었는데, 이미 긴장해 심장박동은 고동칠 때로 치고 있었으니 쿵쾅대는 소리에 검사해 주시는 분까지 걱정하며 첫 테스트를 허무히 끝나버렸다 했다. 이후 마음 다잡고 임한 악력 테스트는 보통으로 지나갔고, 10년 가까이 복싱 할 때마다 연습했던 윗몸일으키기가 1분에 49개라는 숫자를 내자 아직 해 볼 만하다는 느낌이 왔다 했다. 손끝이 발끝 이상을 넘어가야 좋은 점수를 받는 유연성 테스트 역시 꾸준히 연습한 덕에 좋은 점수를 냈고, 길을 걸을 때도 멀리뛰기하며 무릎 으스러질 듯 연습한 덕에 멀리뛰기 1등급을 받았다 했다. 마지막 민첩성 테스트 역시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는 복싱을 해 온 덕에 신급으로 통과했다며 그제야 입이 터져라 웃어 보인다. 그럼 통과할 수 있겠다며 기대하는 내게 방심은 금물이라며, 자신이 속한 팀에서는 잘 친 것 같은데 다른 팀들이 시험 치는 걸 보지 못해 여전히 불안하다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속이타는 일주일이 지났다.

구청 홈페이지, 1차 체력 합격자 이름들 사이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는 남편 이름 석자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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