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나의 두번째 퇴사기 (2)

일단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by 조이 Joy

청천벽력과 같은 유산 소식을 경험한 후 나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졌다. 계획 하지도 않은 임신이었지만 잠시동안 내가 아이를 낳을 거라는 사실이 행복했었나 보다. 임신을 확인하고 심장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 까지 모든 일이 바람같이 왔다 사라졌다. 유산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나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폭탄주를 마셨던 스스로가 무지하고 원망스러웠다. 왜 엽산도 챙겨먹지 않았을까


임신은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건강한 몸을 만들 후 엽산이 부족하지 않게 챙기고 술은 절대 멀리 해야 한다. 슬펐다. 남편도 슬퍼했던 것 같았지만 금새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쉽사리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임신 소식도 말하지 않은 회사에 유산 소식을 전했다. 마음이 고왔던 팀장님은 2주간 쉬다가 나오라고 했다. 당시는 유산 휴가도 없었는데 매우 좋은 분이셨다.


검색을 해보니 유산도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 몸을 잘 보호해줘야 한다고 나왔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간간히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전화를 받고 급한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제대로 몸을 만들고 임신을 계획하기로....


막상 회사로 돌아오니 유산을 했다는 사람들이 커밍아웃했다. 나를 위로해 주려고, 별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일하는 여자에게 유산은 흔한 일이라고....'다들 이렇게 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와 열심히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다시 임신을 계획하자 회사 생활이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일이라는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일의 비중이 높은지라, 또 팀단위로 중요한 미팅이 저녁에도 종종 있었던지라 술을 입에도 대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저녁 약속에서 술을 마시되, 임신 가능성이 있는 기간에만 술을 멀리했다. 그런데 임신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건 괜찮지만, 임신 준비 중이니 술을 안마시겠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것이 "나 회사생활 열심히 안할거에요"라는 뜻으로 해석할 것 같았다. 더욱이 언제 임신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한부로 직무유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저녁 일정과 임신 가능성이 있는 주에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한 노력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임신이 쉽사리 되지도 않았다. 지난 번 피임을 했음에도 임신이 되었던 경험 때문인지 계획하면 금방 아이가 찾아올 줄 알았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약 일년간의 시간이 다 되도록 나에게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배란기 테스트와 임신 테스트기의 헤비 유저가 되었다. 임테기 두줄을 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절실할 수록 원하는 것이 쉽사리 손이 쥐어지지 않았다.


회사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여전히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팀에 나보다 백배쯤 잘난, 결혼도 안 한 언니들이 업무에만 몰두하는 동안 임신을 위해 온 힘을 다 쓰는 나의 격차가 나는것 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은 장기전인데 고작 5~6년 차인 내가 알리가 만무했다.


1년이 조금 넘어 어렵사리 임신에 성공했다. 갖은 노력 끝에 얻은 성취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임신을 하고 심장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또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까지는 주변에 말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임신을 확인 하고 심장소리를 들으러 가는 14일이라는 시간이 14년 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불안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결국, 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조그만 세포같은 작은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건 매우 경이로웠다.


심장소리를 듣고 회사로 돌아갔지만 업무 강도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 임신을 이야기 할지도 애매했다. 혹시나 또 유산을 하게 될까봐 이번에는 조심하고 싶었지만 몸사리는 것이 성격상 환경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는 주 52시간이 자리잡지도 않았거니와 6시에 칼퇴근도 쉽지 않은 문화였다.


실제로 직장 여성의 유산 비율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높았다. 2016~20년 5년 간 유산을 겪은 여성은 45만8417명으로 조사되었다. 저출생 기조로 임신이 줄면서 유산 인원 자체는 과거보다 감소했으나, 임신한 여성 가운데 유산을 겪은 비율인 유산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같은 기간 직장 여성 연간 유산율은 미취업 여성 유산율보다 7%포인트 높게 유지됐다. 노동 환경이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산 여성 10명 중 6명 직장인이지만 ‘노동 인과성’ 인정은 소홀한 것이 사실인게 통계가 증명했다. 실제로 노동시간 길수록 유산 위험 높고, 주당 61~70시간 땐 56%가 더 높다고 했다.

20210812503757.jpg 자료출처: 한겨레 기사. 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07561.html#csidxccd50c227ac6912a4d8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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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힘든 임신을 경험하고 나니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또 잘못된다면 아무리 직장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내 인생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유산을 겪지만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인정도 받는데 나의 멘탈은 유리처럼 약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미 내가 퇴사를한 후였다. 당시의 나는 강렬하게 유산을 막고 싶었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여대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뷰티회사를 내 발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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