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가 아이를 갖는 다는 것에 대한 고찰
멘토를 찾아 나서다 실패를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 여대생들이 가장 다니고 싶은 1등 화장품 회사에서 폼나는 홍보일을 하고 있었는데 실상은 매우 복잡미묘했다. 우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너무 좋았다.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운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고, 당시 회사는 사업을 매우 잘하고 있었기 떄문에 홍보활동을 진행하는데 돈의 제약도 거의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고 기안을 올리고 (거의 예산의 제한이 없이) 실행을 하면 되었다. 그때는 결혼 5년차 아이가 없던 터였기에 활동의 제약이 없었다. 날아다니려면 날아다닐 수도 있었던 호시절. 그러나 아이를 계획하고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 더 하고 싶었다. 일찍 결혼했기에 아이를 낳는 것을 한 없이 미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결혼 후 5년쯤 여전히 아직 젊다고 생각했던 나이에 계획없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피임을 잘 했던 것 같은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일단 임신 사실을 깨닫고 나니 지금 아이를 낳아도 될 것 같았다. 어짜피 평생 딩크로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남들 어렵다는 임신이 계획없이 되긴 하였지만 매우 감사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아겠다고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예상 훌쩍 뛰어 넘는 강도로 기뻐했다. 함께 병원을 찾아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이제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구나",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는구나" 라는 상념과 함께...
그런데 막상 산부인과에서 임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그간 나의 행적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난 주였던가 지지난 주 였던가 셀 수 없이 마셔댔던 폭탄주가 떠올랐다. 태아에 술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리가 없었지만 임신이라는 사실과 함께 걱정이 쓰나미 처럼 밀려왔다. 나는 술꾼은 아니지만 당시 직업상 술자리가 종종 있었다. 김영란법과 코로나 이전이라 회식도 잦았다. 그리고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은 일을 못한다는 의미로 곡해를 한 나는 술자리에서도 술을 잘마시는 것 처럼 보이고 싶어 종종 무리를 하는 오류를 범했다. 팀워크를 빙자한 삼삼오오 모임에 빠지기라도 하면 크게 소외되는 기분이라 팀 내 아싸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도 했더랬다. 더군다나 기자를 상대하는 홍보녀인지라 가끔은 술자리까지 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저런 걱정을 금새 까먹고 철 없었던 우리 부부는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산부인과에서 임신을 확정 받으면 2주 후에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으러 가야하는데 우리는 그 사이에 회사를 제외하고 동네방네 임신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2주 후 병원에 갔는데 아이 심장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심장 소리를 조금 더 늦게 듣는 경우도 있으니 일주일만 더 기다려 보자고 의사는 이야기를 했고, 혹시 그간 술을 마시지는 않았는지 엽산은 섭취했는지 등등을 물어보았다. "아.. 술은 마셨는데 엽산은 먹지 않았지!! "
그리고 그 다음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1주일간 오만가지 걱정이 이어졌다. 남편은 큰 병원으로 일단 옮겨서 진료를 받아보자 했다. 안 먹던 엽산도 먹기 시작했다. 태아의 뇌 발달을 도와 신경관 결손을 막고 습관성 유산, 다운증우군, 저체중아, 거대적아구성 빈혈을 예방해 준다는 이 좋은 영양제를 나는 왜왜왜왜왜왜왜 먹지 않았던 걸까라는 자책과 함께..
일년 같았던 일주일이 지나고 심장 소리를 들으러 더 큰 산부인과로 향했다. 더 큰 산부인과에 가면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보같은 희망과 함께.. 그러나 여전히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계류성유산이라고 했다.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고.. 계류성 유산의 경우는 아이가 여전히 엄마이 뱃속에 있기 때문에 따로 수술도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주간 나에게 벌어진 일들 임신과 유산이 드라마틱하게 휘몰아쳤고,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