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기능장 실기, 한 달반의 기록(2)

실력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by 붕어빵숨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크림의 상태를 보고,

오븐 타이머가 울릴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그때.


내 손목에 걸린 갤럭시 워치가 갑자기 진동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쓱 내려다보았다.


발신자 : 엄마.


순간, 등줄기에 차가운 느낌이 스쳤다.


엄마는 웬만하면 연습 시간에 전화하지 않는다.


엄마는 항상 “연습 끝나고 전화해.”

라며 먼저 배려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 엄마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한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숨이 찬 듯, 떨리는 목소리였다.


“수민아, 오늘 좀 많이 어지럽네.

머리도 지끈거리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엄마, 지금 어디야? 집이지?

혼자 있어? 쓰러지진 않았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원장님께 달려가 상황을 말씀드렸다.


“원장님, 죄송한데 오늘 연습 여기서 중단해야 될 거 같아요.

지금 엄마가... 상태가 좀 안 좋아서요.

지금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원장님은 더 묻지도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가. 연습은 내일 와서 하면 돼.”


순간 목이 꽉 막혔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설거지도 제대로 마무리 못한 채

앞치마만 훌렁 벗어 들고 학원 문을 뛰쳐나왔다.


지하철 안에서 창밖을 보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혹시... 정말 큰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연습? 시험?...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이야.

엄마가 아프면, 다 무너지는 건데.’


밖의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고

응급상황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리가 풀려서 의자에 털썩 앉아버렸다.


엄마는 미안하다고만 했다.


“연습하는데 괜히 불러서... 엄마 때문에 시간 뺏겼지?”


나는 마스크 안에서 웃으려고 애썼다.


“아니야, 엄마.

빵은 다시 구우면 되는데, 엄마는 세상에 하나야.”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누워 있는데

학원에서 못 마무리한 리허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오늘 연습 못했네...’


라는 생각과


‘그래도, 엄마가 괜찮아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이 계속 부딪혔다.


제과기능장은

단순히 ‘자격증을 따기 위한 준비’가 아니었다.


엄마의 건강과 내 꿈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던 시간이었다.


인정받고 싶어서, 증명하고 싶어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순간



그날 이후로

내 연습 일정은 늘 엄마의 컨디션과 함께 움직였다.


엄마가 괜찮은 날에는

한 번이라도 더 리허설을 돌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연습 시간을 줄이고 옆에서 같이 누워 있었다.


제과기능장 준비”라는 말 뒤에는 항상 “엄마의 상태”가 붙어 있었다.


어느 날,

리허설이 끝난 뒤 원장님이 내가 만든 케이크 위 초콜릿장식물, 레터링을 한참 들여다보셨다.


'수민아, 레터링 선이 왜 이렇게 얇아?'


'와.... 이 정도로 얇게 짜는 거 진짜 힘든데.

초콜릿 두께도 얇고 이 정도면 실기 나가도 합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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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비뇽 프랑스빵 2. 다크초콜릿 연꽃 3. 랑그드샤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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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이트초콜릿+다크초콜릿 주사위 5. 5번 과제 케이크 6. 좁프빵


잠시 멈췄다가, 원장님이 말을 이었다.


'너 그 실력이면... 진짜 한 번에 붙겠다.

처음엔 솔직히 ‘말만 저렇게 하는구나’ 싶었거든.

근데 직접 보니까 알겠네.

다른 준비생들보다 습득도 빠르고, 준비도 철저하고... 잘하네.”


나는 그 칭찬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얇고 균일한 초콜릿'은 기능장 실기에서 점수를 먹는 부분이었고,

그 기준을 넘기 위해 한 줄, 한 줄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실력’ 때문에 인정받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보다 두세 배는 더 해야

비슷한 출발선 위에 올려지는 느낌.


그래서 더 독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포기 대신, 선택과 집중



실기 시험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긴장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몸을 조여왔다.


제과기능장 실기 과제는 1번부터 13번까지.


시험 당일에는 그중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모든 과제를 완벽하게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결국 전략을 정했다.


정말 손이 안 붙는 몇 품목은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나머지 과제들은

'누가 봐도 이쁘다' 할 만큼 완성도를 올리자.


그래서 시험 직전까지도

내가 유독 약한 과제들만 골라 부분 연습을 반복했다.


반죽의 질감, 크림의 농도, 굽기 시간, 마무리 데코.

하나라도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책임지겠다고 고른 것들만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리고 마침내,

제과기능장 실기 시험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전날 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빵은 다시 구울 수 있어도, 시험 날은 단 한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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