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기능장 필기, 푸드카빙 국가대표 선발전 원서접수

간병하는 딸, 제과기능장을 꿈꾸다.

by 붕어빵숨니

엄마의 몸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 대학병원, 경기도 대학병원...


좋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처방받은 약을 성실히 드셔도

증상은 잠깐 줄어드는 듯하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원인 모를 두통과 어지러움.


결국, 수술 날짜가 잡혔고

엄마는 조용히 입원 수속을 밟으셨다.


입원 생활은,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버거웠다.


간병이라는 건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때 문득, 어릴 때 듣고 흘렸던 말이 떠올랐다.


“돈보다 건강이 최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에이, 난 건강보다 돈이 더 좋은데...

왜 다들 건강, 건강하는 거지?’


그땐 진짜로 이해가 안 갔다.


근데 엄마가 아픈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

그 말이 뼈저리게 이해가 됐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몸은 쉽게 안 돌아온다.’


청각장애를 가진 딸로서,

몸으로 돌보고, 곁을 지키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 간호사님과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은 벽이었다.


코로나 시기라

마스크로 입이 가려져 있고,

입 모양을 읽을 수 없으니

말을 알아듣기가 더 힘들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서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잘 못 알아들어서요.

필담으로 적어주셔도 될까요?”


다행히도 의료진들은 바쁘면서도

한 번 더, 천천히, 글자로 설명해 주었다.


그 작은 배려들이, 그때의 나에겐 너무 고마웠다.


엄마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엄마가 그렇게 말해줄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낮에는 엄마 옆에서 간병을 하고,

밤이 되면 병실 조명이 약해지는 시간에

나는 조용히 제과기능장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은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어떻게든 버티고 싶어 했다.


“엄마도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데,

나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되지.”


그래도 어느 정도 통증이 조절되고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자

엄마는 퇴원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수술했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날마다 통증의 정도가 달라졌다.


어떤 날은 괜찮은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버거워 보였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엄마니까”

그저 옆에서 컨디션을 살피고,

식사, 약, 휴식을 챙기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어느새 제과기능장 필기시험날이 다가왔다.


공부량은 많았고,

외울 것도 산더미였다.


솔직히 말하면,

“한 번에 붙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간병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문제를 풀 때마다 불안감이 따라붙었다.


“떨어지면... 뭐, 다시 보면 되지.

지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겨우 다잡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콩닥콩닥 소리를 내며 뛰어댔다.


시험이 시작되고,

문제를 한 번 훑어보았다.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와... 책에서 본 문제는

한두 개 있는 정도잖아?

아, 어떡하지.’


머리가 새하얘지려는 걸 억지로 붙잡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일단 하나씩 보자.

침착해, 수민아.

할 수 있는 것부터 풀어.’


마우스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지만

알고 있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모르는 문제들은

결국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쯤 되면 찍기의 신에게 맡겨야지...’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고

마지막 문제까지 체크한 뒤

마우스 커서가시험 종료 버튼 위에 멈춰 섰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어깨를 잔뜩 긴장한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합격’이란 단어 한 번만...”


손가락이 ‘달칵’ 하고 버튼을 눌렀다.


잠시 화면이 바뀌는 듯하더니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한쪽 눈을 떴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그 문장이 모니터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순간,

숨이 멎은 줄 알았다.


“진짜야...? 진짜 합격이라고...?”


합격이라는 글자 아래

점수를 확인해 보니

정말 말 그대로 턱걸이였다.


“여기서 한 문제만 더 틀렸어도...

바로 불합격이었네.”


긴 숨이 ‘후’ 하고 새어 나왔다.


마치 누군가


“그래, 여기까지 버틴 너한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 그래도, 붙긴 붙었네.

제과기능장 필기 합격이라니...”


그 순간만큼은

어깨에 올려져 있던 돌덩이 하나가

쑥 내려간 것 같았다.


필기를 통과하자

홀가분함과 동시에

또 다른 벽이 눈앞에 서 있었다.


“이제, 실기다.”


제과제빵 학원을 알아보고,

레시피와 공정표를 찾아보며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또 하나의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공문.


익숙한 이름.


하지만 이번에는 제과제빵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만 참가 가능한 선발전이었다.


공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중

한 단어가 눈에 박혔다.


‘푸드카빙 직종’


칼로 채소, 과일을 깎아

작품을 만드는 종목.


개최지는 러시아.


“오, 러시아에서 열리는구나...

러시아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푸드카빙으로 나가볼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나는

백수이자, 간병인이자, 기능장 준비생.


“제과기능장 준비도 해야 하고,

푸드카빙까지 같이 준비한다고...?

이게 가능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또 이런 기회가 올까?”


퇴사 후,

시간은 많지만

마음은 늘 바닥과 가까운 상태였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그래, 어차피

인생 두 번 사는 것도 아닌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두 마리 토끼 한 번 쫓아보자.”


나는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푸드카빙 직종 원서접수를 마치고 나니

눈앞에 또 하나의 목표가 선명하게 서 있었다.


“수민아, 힘들어도

여기까지 온 너를 믿어보자.

잘하고 있어.”


내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번 더 버티기로 했다.

이전 01화SPC 파리바게트 직영점 6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