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기능장 실기, 6시간의 전쟁

빵은 다시 구울 수 있어도, 시험 날은 단 한 번뿐이다.

by 붕어빵숨니

기능사 실기, 각종 대회 실전을 수도 없이 치르다 보니

시험 전날은 항상 똑같았다.


눈을 감아도 배합표랑 순서만 떠오르고,

깊게 자려하면 갑자기 타이머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제과기능장 실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날 밤, 준비물을 다시 체크했다.


도구 목록을 훑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기능사 실기 때 짊어졌던 짐의 거의 네 배.


스텐볼, 스크래퍼, 계량컵, 플라스틱서랍장, 깍지, 짤주머니, 온도계, 토치, 도마, 칼, 나무주걱, 대리석 등


“이걸 진짜 다 들고 가야 돼?”


뚜벅이였으면 애초에 불가능이다.


내 차가 없었다면, 시작도 못 했을 시험이었다.


뒷좌석, 트렁크에 도구를 실으면서

벌써 체력이 반쯤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험 당일 아침.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운전대를 잡고

수원과학대학교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둘러보니

이미 도구를 다 꺼내 놓고 대기 중인 사람들이 꽤 있었다.


‘헉! 다들 왜 이렇게 빨라....? 나만 느린 줄.....’


나도 급히 트렁크를 열고

카트에 도구를 차곡차곡 올려

시험 대기실로 향했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배합표, 공정 순서, 작업 동선을 머릿속에서 다시 돌렸다.


잠은 제대로 못 잤는데,

머리만은 기묘하게 또렷했다.


잠시 후, 시험감독위원님이 들어오셨다.


과제표를 나눠 주며 규칙과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출석을 확인했다.


손에 쥔 과제표를 펼치기 직전,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제발.... 제발.... 내가 그나마 잘하는 과제,

그중에서라도 나와라!!!’


살짝 눈을 내리깔고 과제표를 보는데,


〈1번 통밀바게트와 반반케이크〉


그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1번...? 그래,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좋아, 여기서 내 실력을 다 끌어올려 보자.’


시험장 입실 시간이 되어

각자 카트를 끌고 작업대로 이동했다.


내 작업대는 오븐 바로 앞.


좋다고 해야 할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위치였다.


도구 세팅 시간 동안

손은 분주했지만, 머릿속은 딱 하나였다.


“평소에 하던 대로.

환경은 바뀌어도, 내 루틴은 그대로.”


볼을 놓는 자리, 스패튤러를 걸어두는 위치,

계량대와 믹서기 방향까지

학원에서 연습할 때와 최대한 똑같이 맞춰놓았다.


세팅 시간이 끝나고

감독위원이 하나씩 도구 점검을 하고 나서 말했다.


“곧 시작합니다. 준비하시고요.”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빨리 시작했으면 싶으면서도,

막상 “시작” 소리를 듣기 직전엔

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같이 올라온다.


“시작하세요!”


그 한마디에 시험장은 한순간에 전쟁터가 됐다.


나는 바로 케이크 시트 반죽부터 돌렸다.


계량 – 믹싱 – 팬닝 – 오븐 투입.


오븐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통밀바게트 반죽으로 넘어갔다.


“멍하니 있을 시간은 1초도 없다.”


반죽이 돌아가는 사이,

한쪽에서는 초콜릿을 꺼내 살펴봤다.


처음 보는 브랜드.


CARGILL 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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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보통은 칼리바우트 많이 쓰지 않나...?’


초콜릿은 브랜드마다 템퍼링 온도가 미묘하게 다르다.


화이트 초콜릿은 특히 예민하다.


‘아오! 오늘 화이트 초콜릿 템퍼링 잘 못하면 진짜 망하는 건데...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겁부터 먹을 순 없지.’


나는 초콜릿 봉지 뒷면을 유심히 읽었다.


권장 템퍼링 온도.


머릿속에서 내가 평소에 맞추던 온도와 비교해 가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감독위원님들은 이 작업대, 저 작업대를 천천히 돌며

우리가 만드는 반죽, 모양, 마무리를 하나씩 훑어봤다.


시험장에는 나까지 총 10명.


각자 자기 앞의 6시간에 매달린 채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가장 큰 약점은 한 가지였다.


마. 카. 롱.


무엇을 해도 늘 어딘가 마음에 안 들었다.


껍질이 과하게 부풀거나, 꼬끄 색이 고르지 않거나.


그래도 포기할 순 없으니

“중간 이상은 나오게 하자”는 마음으로 계속 연습해 왔는데,

실전은 늘 변수를 안고 있었다.


레드 마카롱을 오븐에 넣고

굽기 정도를 체크하며 기다리는데,

꺼내 보는 순간, 직감했다.


아. 뿔. 싸.


예쁜 레드여야 하는데,

살짝 과하게 구워져

레드에 황토색이 살짝 섞인 애매한 색.


“아.... 어떡하지.... 진짜 왜 이러냐, 수민아....”


시계를 흘끗 봤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지나 있었다.


다시 만들기엔 너무 늦었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돌아갔다.


‘지금 다시 하면, 다른 데서 다 무너진다.’


결국, 그대로 들고 가기로 했다.


“에라 모르겠다.

실기 시험은...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되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음 공정으로 몸을 밀어붙였다.


통밀바게트는 생각보다 잘 풀렸다.


발효를 마치고 칼집을 내고,

오븐에서 구워져 나오는 순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칼집이. 빵빵하게. 터졌다.


‘와! 학원에서는 그렇게 죽어라 칼집을 내도

한 번을 제대로 안 터지더니,

여기 와서 처음으로 이렇게 터지네!!!’


마스크 안에서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통밀바게트부터 먼저 제출하고

다시 작업대로 돌아와

케이크 마무리에 집중했다.


시험장 전체를 슬쩍 둘러보니,

다들 표정이 상당히 지쳐 있었다.


오븐 바로 앞이 내 자리라

다른 수험생들이 꺼낸 제품들도 곁눈질로 보였다.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많지 않았다.


“연습 시간이... 부족했겠지.”


여러 대회에 나가면서

나는 정말 잘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많이 봐 왔다.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높아져 있었고,

그래서 더 냉정한 시선으로

내 작품을 같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에서라면...

버틸 수 있겠다.’


5시간 반이 흘렀을 무렵,

케이크 위에 마지막 장식물을 올리고

사방을 천천히 살폈다.


기울어진 부분은 없는지,

초콜릿 가나슈는 깨끗하게 유지됐는지,

초콜릿 장식물은 딱 고정되어 있는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자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마감에 쫓기며

손이 덜덜 떨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제일 먼저 작품을 제출했다.


작업대가 갑자기 휑해졌다.


몸은 녹초였는데,

머릿속은 이상하게도 텅 비었다.


“벌써 끝이야?”


홀가분함, 허무함,

아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초콜릿도 이것저것 브랜드를 더 써볼 걸,

마카롱도 조금만 더 연습할걸...”


완벽하고 싶었지만,

항상 그렇듯 시간이 문제였다.


정리까지 마치고 도구를 카트에 다시 싣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트렁크 문을 닫는 순간,

그동안의 연습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한 번에 밀려왔다.


엄마의 병원 침대 옆에서 필기 책을 보던 밤,

엄마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학원으로 뛰어가던 날,

하루에 리허설 두 번씩 돌리며

손이 부르트도록 짤주머니를 잡고 있던 시간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은 채 한참을 울었다.


“진짜 너무 힘들었다.......”


한 달 뒤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다시 “간병하는 딸”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엄마 약을 챙기고,

병원에 모시고 가고,

상태를 살피고,

그리고 그 와중에

내 안의 기대와 불안을 조용히 눌러야 했다.


“수민아, 이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고생했다.

결과는 조금 나중에 들어도 돼.

오늘만큼은, 그냥 푹 쉬자.”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제과기능장 실기, 6시간의 전쟁을

잠시 뒤로 밀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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