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의 순간, 대통령이 꿈에 찾아오던 날

대통령 꿈과 한 줄의 합격 문자

by 붕어빵숨니

제과기능장 실기시험이 끝난 날,

수원과학대학교 주차장에서 차 문을 닫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긴장을 붙들고 버티던 6시간이 끝나자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고,

손도, 다리도, 마음도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지 않았다.


핸들을 잡고 잠깐 그대로 엎드려 울다가,


“이제 정말... 끝났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나서야 겨우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냥 쓰러지듯 눕고 싶었는데

현실은, 베란다에서 설거지 대기 중인 도구 더미였다.


묵묵히 도구를 하나씩 꺼내 베란다로 옮기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결과는 그냥... 맡기자. 수민아, 여기까지도 잘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릿속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오븐 속에서 애매하게 구워지던 마카롱,

살짝 과하게 익어버린 레드+갈색,

조금 더 매끈할 수도 있었던 케이크 옆면...

장면이 계속 반복 재생됐다.


‘거기서 조금만 덜 구웠으면...

한 번만 더 확인했으면…’


이미 끝난 시험인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시험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되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합격 발표까지는 대략 한 달.


낮에는 여전히 “제과기능장 준비생”이 아니라

“엄마의 간병인”이었다.


약 시간 맞춰서 챙겨드리고,

병원 진료 예약 확인하고,

운전해서 모시고 다녀오면 하루가 금방 끝났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운전석에 기대고 조용히 숨을 내쉬며 늘 같은 말을 했다.


“오늘도 잘 버텼다. 엄마도, 나도.”


그리고 그렇게,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했는지

알람도 못 듣고 늦잠을 잤다.


꿈속에서, 갑자기 문재인 전 대통령님이 나타났다.


언제 어디를 걷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분명한 건 그분이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꼭 안아 줬다는 거다.


“고생 많았어요.”


딱 그 한마디.


따뜻한 손길과 함께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디지털 숫자가 정확히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제과기능장 실기 합격 문자가 오는 바로 그 시간.


“설마... 설마 오늘...?”


침대 위에서 그대로 몸을 일으켜 폰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타이밍이라도 맞춘 것처럼 카카오톡 알림이 ‘띠링’ 하고 울렸다.


화면에 뜬 문장을

나는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제과기능장 실기시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그 문장을 다섯 번은 넘게 읽었다.


잘못 온 문자 같기도 하고, 꿈의 연장선 같기도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천천히, 정말 천천히 실감이 올라왔다.


“나... 합격했네! 진짜... 해냈네...”


나는 벌떡 일어나 방 문을 확 열고

거실에 있던 엄마에게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엄마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폰 화면을 확인한 뒤에야 웃으셨다.


“진짜야? 아이고, 우리 딸...

얼마나 고생했는데... 잘했다, 진짜 잘했다.”


엄마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한꺼번에 비쳤다.


나는 방금 전 꿈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드렸다.


대통령님이 안아 주면서

“고생 많았어요.”라고 말해주던 장면까지.


엄마는 “와... 진짜 신기하다...” 하시면서도,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이셨다.


“그래서 더 잘 될 줄 알았어.

우리 수민이는 꼭 될 줄 알았어.”


그 말을 듣는데

그동안 가슴속에서 매일 조금씩 부서지던 조각들이

조용히,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일단 그날은

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었다.


“그래, 수민아. 넌 진짜... 여기까지 잘 버텼다.”


두 달 뒤,

나는 한국제과기능장협회 신입회원식에 참석했다.


코엑스 베이커리페어 입구로 들어가자

‘한국제과기능장협회 신입회원식’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적힌 명찰을 받고

제과기능장 가운을 건네받았다.


탈의실에 들어가

가운을 조심스럽게 걸치고

단추를 하나씩 잠갔다.


가운 왼쪽 가슴에 박힌 로고와

그 아래 수 놓인 글자를

나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KMB 제과기능장”



손끝으로 그 글자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한 줄을 여기다 새기기까지...

도대체 몇 년을 버틴 거야, 나...”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자

선배 기능장님들이 줄지어 서 계셨다.


심사위원으로 하러 오시고, 행사 준비하느라 바빠 보이셨다.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신입 기능장들이 앞으로 나가

손을 맞잡고, 기능장협회 뱃지와 명패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홍수민 제과기능장님.”


그 호칭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앞으로 나가는 짧은 몇 걸음 사이,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장면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처음 제과를 배웠던 대전직업능력개발원 실습실,

밤마다 마감하던 이마트 베이커리 주방,

새벽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파리바게트 신사점,

국가대표 선발전 연습하던 날들,

불 앞에서 설탕공예를 하다가 데었던 엄지손가락,

엄마 곁 병실 침대 옆 의자,

제과기능장반 작업대와 밤 12시가 다 되도록 휘젓던 반죽.


모든 장면들이 겹쳐지며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내 안에 착 하고 붙었다.


명패를 받는 순간,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야.

내가 버티고, 견디고, 다시 서려고 발버둥 쳤던

모든 날들의 무게가 여기에 얹혀 있구나.’


행사가 끝난 뒤,

나는 학원 원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고 난 후,

제자리로 앉아서 핸드폰 속 사진 앨범을 넘기다가

대전직업능력개발원 스승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다.


스승님이 내게 했던 말이 갑자기 귀에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넌 10년 뒤에 반드시 기능장이 될 거야.

기능장 가운 입고 나한테 다시 와.”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반쯤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에이, 설마요 선생님~’

웃으면서 넘겼던 말.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정말로 그 말이 가리키던 자리에

내 두 발로 서 있었다.


“선생님, 저 진짜 제과기능장 됐어요.”


핸드폰 화면 속

그때의 우리를 보면서

나는 조용히, 그리고 크게 웃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그렇게 7년 넘게 달려왔더니,

이제야 겨우 내가 서야 할 결승선 앞에 선 것 같다.”


뒤돌아보니,

그 결승선 뒤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햇빛을 머금은 비눗방울처럼 알록달록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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