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두 번, 웃음은 그보다 더 많이
제과제빵자격증은 보통 기능사 - 산업기사 - 기능장 - 명장 순서로 나뉜다.
기능사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입문 티켓이라면,
기능장은 제과제빵 관련 일을 7년 이상 해야 겨우 응시 자격이 생긴다.
내게 기능장은, 제과제빵 인생 7년을 한 줄로 증명하는 시험이다.
그래서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난 뒤,
나는 곧바로 제과기능장 실기 연습을 할 수 있는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기능장은 커리큘럼도 다르고,
수업 스타일도 다른데
생각보다 기능장반을 운영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서울, 경기도...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반경을 넓혀 가며 하나씩 찾아봤다.
“집이랑 너무 멀면 체력이 버틸까...
그래도, 제대로 배우려면 어쩔 수 없겠지.”
결국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으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나는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
대충 전체를 훑고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과제 하나씩 집중해서 잡아주는 수업 방식인지,
실전처럼 리허설을 여러 번 돌려볼 수 있는지.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솔직한 욕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왜냐하면,
학원비도 재료비도 싸지 않았고
그때 나는 ‘백수’였다.
주머니는 텅 비어 있는데,
준비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 같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떨어질 여유 따윈 없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바로 제과기능장 실기 ‘지옥’ 연습이었다.
학원에 첫날 도착했을 때,
문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르며 손에 땀을 꽉 쥐었다.
“들어가자. 여기서 물러나면, 시작도 못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원장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원장님이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수업은 과제 하나씩 순서대로 지도해 드릴 거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요.
솔직히 말해서... 한 번에 붙는 사람, 거의 없어요.
나는 '절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서 이상하게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아뇨, 전 무조건 한 번에 붙을 거예요.
대회 출전 경험도 있고,
과제 목록 보니까 예전에 대회에서 해본 것들도 많아서.....
제 기준에선 연습기간은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원장님은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길게 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래요.
그 자신감, 끝까지 그대로인지... 내가 한 번 지켜볼게요.”
그렇게 나는 제과기능장반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동시에, 내 삶의 또 다른 지옥문이 열렸다.
첫 수업 날.
제과기능장을 이미 취득한 선생님께서
과제 1번을 시연해 주셨다.
계량, 반죽, 온도, 시간, 질감, 마무리.
하나하나 과한 말 없이 정확하게 짚어 주셨다.
그 뒤를 바로 따라 하며,
내 손에 그 감각을 옮겨 심어야 했다.
과제 1번부터 13번까지 다 끝내고 나자
바로 리허설 이야기가 나왔다.
“기본을 알았으면, 이제부터는 실전처럼 해야지.”
그때부터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리허설 모드에 들어갔다.
여러 대회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던 덕분에
작업 동선, 시간 배분, 순서 구성은 꽤 익숙했다.
“아... 그래도, 이전에 대회 준비했던 게 헛된 시간은 아니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연습 강도를 조금씩 올려 나갔다.
내 루틴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굳어졌다.
아침 7시 학원 도착
도구 세팅 후, 첫 번째 리허설 1회 6시간
피드백 정리, 설거지, 정리.
점심 식사 하고 나서
다시 도구 세팅 후 두 번째 리허설 2회 6시간
남는 시간엔, 유독 약한 품목들을 뽑아 부분 연습.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밤 23시,
늦으면 자정 가까이.
발바닥은 퉁퉁 붓고, 팔 힘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항상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래, 오늘도 할 만큼 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잘하면 된다.”
같이 준비하던 언니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수민아, 너 미쳤다... 하루에 리허설을 두 번 한다고??? 넌 체력이 뭐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습득하지? 진짜 대단하다...”
“근데, 너 진짜 독하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한번 목표를 박아 두면
옆도 뒤도 안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었다.
남들 눈에는 무모해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게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같이 준비하던 언니 둘과 나, 셋이서
매일같이 연습하고, 수다 떨고, 맛있는 거 시켜 먹으면서
작업장을 아예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셋이 둥그렇게 모여
"오~ 오늘은 바게트 잘 터졌는데?"
"수민아, 이건 뭐냐 ㅋㅋㅋㅋ"
서로의 빵을 들고 깔깔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원장님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시다가
쓰윽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어휴, 너희는 손은 안 아픈데 입만 아프겠다.
복도 끝까지 다 들려, 얘들아."
입으로는 툴툴거리지만,
우리가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으셨는지
끝에는 피식 웃으셨다.
가끔은 원장님이 김밥이나 간식을 사다 주시기도 했다.
우리도 각자 간식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와
"이거 먹어봐, 맛있어!" 하며 서로 나눠 먹었다.
원래라면 실기 연습은 지치고, 힘들고,
중간에 "아.... 진짜 하기 싫다...." 소리가 나올 법한 시간인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웃고,
같이 빵 굽고, 같이 배달시켜 먹고...
덕분에 제과기능장 연습의 한 달반은
그냥 '지옥 같은 훈련'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