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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Sep 17. 2017

갈라파고스: 오랜 이상향

여행이 시작되는 적도의 섬, 마음가짐 정비 완료

20170622~20170629: Galapagos Islands, Ecuador

갈라파고스 제도의 주도(主嶋)인 산타크루즈 섬의 푸에르토 아요라 항구. 시간 뜰 때마다 여기서 멍을 때렸다. 아주 좋았다. 20170622

우리 동네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동생과 지구본을 팽그르르 돌리며 도시 이름 맞추기 게임 같은 걸 하는 걸로 근심 없이 시간을 때우던 시절이다. 그 까마득한 꼬마 때부터 나는 낯선 곳에 대한 환상을 차곡차곡 품어왔다. 머나멀기에 더욱 환상적이게 느껴지는 이상향 같은 곳들. 갈라파고스는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이 이름이 종의 기원, 다윈, 거북이 따위와 뒤엉킨 채로 오랫동안 가슴속에 들어있었다. 거기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에콰도르라는 나라 이름은 적도에서 비롯됐다. 6월 22일, 발트라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지명의 유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열하는 적도의 햇빛이 온몸으로 여과 없이 내리꽂혔다. 눈부시도록 새파란 바다가 하늘과 맞닿은 채 출렁이고 있었다. 바다, 나는 바다를 위해 왔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다이빙을 시작하고 난 뒤로 온갖 꿈의 여행지들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 할 수 없는 곳의 두 종류로 나뉘었다. 갈라파고스는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 그것도 태평양 한가운데서, 길들여지지 않은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두근거렸다.



잠겨있는 아름다움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다음날, 극한의 포인트로 악명 높은 고든락에서 첫 다이빙을 했다. 슬쩍 훔쳐본 명단에는 로그수가 100을 훌쩍 넘는 다이버들이 가득했다. 열두명 중에서 나는 두 번째 초보였다. 첫 번째 입수부터 거센 조류 탓에 물속에서 아등바등하느라 힘겨웠지만 망치상어 서너 마리와 거북이를 볼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때만 해도 200 로그가 넘는 다이버보다 숨을 많이 남겨 돌아왔기 때문에 자신감이 붙었다. 다음 다이빙으로 박살날 자신감이었지만. 두 번째엔 조류가 처음보다 배는 더 거셌다. 잔잔해 보이는 바다 아래가 그토록 난장판일 줄이야.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제자리를 사수하기도 힘들었다. 자꾸만 뒤로 밀려나면서 곧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다행히 나만 분투하는 건 아니었다. 원래는 수중의 지형지물에 손을 대선 안 되는데 다른 다이버들은 물론 강사까지도 바위를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장갑도 없이 매달리는 바람에 양 손이 만신창이가 됐다. 살아남았다는 훈장 같았다. 흔치 않은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 지불한 대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 아수라장 가운데 족히 20마리는 돼 보이는 망치상어 떼를 만났다. 내 몸 아래, 보다 깊은 곳에서 상어들이 무리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조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유유히, 우아하게. 


산타크루즈 섬에서 보낸 마지막 날에도 다이빙을 했다. 세이무어는 고든락보다는 한결 수월한 곳이었다. 조류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시야도 좋았다. 망치상어는 조금밖에 못 봤지만 화이트팁 상어를 꽤나 가까이에서 여러 마리 만났다. 당분간은 더 이상 물속의 상어를 만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실컷 보았다. 아기자기한 열대의 바다와는 또 다른 장엄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다이빙 할 거면서 물에 뜨는 셀카봉만 사가는 바람에 고프로의 효용이 떨어졌다. 다이빙 샵에서 받은 영상과 합쳤더니 분량이 길어졌는데 용량을 맞추니 화질이 깨진다. 


다이빙을 시작한 뒤 누군가 해 준 얘기가 있다.

지구의 70%가 물로 이뤄져 있는 만큼,
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은 거진 다 땅 위가 아닌 바다 아래에 있다


바다 아래로 자맥질해 내려갈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절대적으로 고요한 가운데 오롯이 들리는 나의 숨소리, 거기서 제 방식대로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 뭍에서와 다른 빛으로 반짝이는 색깔들. 까마득히 더 깊은 곳에 신이 숨겨놓은, 아직 인간이 닿지 않은 생태. 언젠가 죽어야 한다면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인 채 눈을 감는 것도 좋으리라. 뭐 이런 엄마한테 등짝 맞을 것 같은 생각도 해봤다.


핀존 스노클링, 베이투어 스노클링을 하며 발로 찍은 고프로 영상을 편집해보았다. 20170623+20170625, 산타크루즈+핀존, 갈라파고스, 에콰도르


누군가의 제자리


신기한 생물들은 갈라파고스의 육지에도 즐비했다. 산타크루즈 섬에 도착한 첫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윈센터에 다녀왔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힐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선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가는 새는 펠리컨이었다. 아주 먼 곳으로 떠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한국과의 지리적 거리를 실감케 하는 동물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이 마냥 신기했는데, 모두가 나로 인해 지레 겁을 먹었다. 엘찬토에서는 뻘과 뒤엉켜있는 갈라파고스 거북을 실컷 봤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서 살아있는 화석들이 육중한 몸뚱이를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작은 기척에도 잔뜩 움츠러들었다. 안쓰러웠다. 바다 이구아나들도 그랬다. 숨죽이고 다가갔지만 돌연 죽은 듯이 하던 일을 멈추거나 재빨리 달아나버렸다. 



갈라파고스의 동물들 가운데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동물은 물개, 바다사자(Sea Lion이라고 돼 있었지만 바다사자보다는 물개처럼 생긴 애들이었다)였다. 산크리스토발 섬 라 로베리아 해변에서는 물개한테 밀려 쫓겨나기도 했다. 천막 그늘 아래 앉을만한 통나무가 있길래 이어폰을 꽂은 채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오른편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나무를 흔드는 게 느껴졌다. 그늘을 찾아 자러 올라온 바다사자였다. 화들짝 놀라서 가진 걸 다 떨어뜨렸다. 물개는 나른하게 한쪽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곤히 잠들어버렸다. 내가 땡볕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변은 물론 항구의 벤치나 정박한 고무보트 위에 물개들이 마치 길고양이라도 되는 양 보란 듯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유의 비린내를 풍기며 인간의 자리 위에서도 쉽게 잠이 들었다.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았다. 다이빙을 하다 만난 J언니는 하나 둘 익숙하게 항구의 벤치를 차지하고 눕는 물개들을 가만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원래 얘들 자리인데 사람들이 벤치를 만든 거지." 그랬다. 거기서 더 자연스러운 존재는 분명 널브러진 물개들이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걸 잊고 있었다. 생태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침입자인 것은 어쩔 수 없는데 말이다.

  



가까이의 작은 행복


침입자로 그 섬을 즐기는 동안, 내 자리가 아니기에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핀존 스노클링을 하는 날, 일찍 일어난 김에 동네 산책을 했다. 마침 마라톤 행사 같은 게 열리고 있었다. 뜀박질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동네 사람들이 전부 참여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잔치였다. 결승점에 도달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방차가 소방용수를 뿌려줬다. 발상 자체가 무척 귀엽게 느껴졌다. 주변까지 시원해지는 듯해서 기분도 좋았다. 



15분쯤 멍하니 지켜봤나 보다. 그때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두 청년이 있었다. 그들에게 물줄기가 뿌려지는 순간 무지개가 돋아났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청년들이 느꼈을 사소하지만 벅찬 행복이, 평화로운 풍경 속 섬사람들의 따듯한 미소가 가슴속으로 오롯이 밀려들었다.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흘렀다.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행복이 그토록 멀리 있는 것은 아닌데 언제부턴가 나는 자꾸 먼 곳만 내다보았다. 여유를 잃으면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자주 잊었고, 나에게도 남에게도 퍽퍽해졌다. 그런 나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멀리로 멀리로 가려고 했던 데는 즐거움과 동경으로 포장된 속상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목적지 없는, 위태로운 도주였다. 



같은 이유로 여행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난 그때까지도 수시로 마음이 서늘해지곤 했다. 나의 사람들, 나의 터전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홀로 있다는 사실이 더해져 외로웠고, 또 내가 분에 넘치는 걸 저질러 버렸구나 싶어서 아찔했다. 이미 시작되어버린 여정은 더없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방황을 비로소 실감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순간 행복하게 달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 치유를 받았다. 마음 깊은 곳부터 머리 끝까지 완전히 충전되었다. 내가 내린 선택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겠다는 환희가 차올랐다. 앞으로의 여정은 물론, 그 이후 이어질 조금 다른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애써 모른 척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한 번쯤 통과해야만 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음가짐을 가다듬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나의 오랜 이상향은. 


보기만해도 뜨거운 선인장. 어쩐지 자꾸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물론 손도 못 댔지만. 20170628
#소소한 여행 팁

1.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는 말이 있을 만큼 물가가 비싸지만 모든 투어는 흥정이 가능하다. 산타크루즈에서 고든락, 세이무어 다이빙 모두 원가로 $170을 불렀으나, 흥정 끝에 둘 다 $140으로 예약했다. 다이빙 투어 시세는 $150선으로 생각하면 된다. 항구 바로 앞 Nautilus라는 다이빙 샵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경험이 없는 다이버라면 고든락은 포기하길 추천한다. 생존의 문제다. 

2. 핀존, 산타페 등 스노클링 투어의 시세는 최저가 $110선인 것으로 추정된다. 열대 바다의 스노클링을 생각하면 안 된다. 수온이 매우 낮고 조류가 있는 편이라 시야도 그다지 좋지 않다.

3. 산타크루즈를 기점으로 이사벨라 섬, 산크리스토발 섬 등지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산타크루즈를 들리지 않고 섬 간 이동을 하는 방법은 없다. 양 섬으로 이동하는 배는 편도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상상보다 훨씬 더 거친 항해를 하므로 멀미약 등을 사전에 복용하는 게 좋다.

4. 위의 이유로 입도와 출도를 다른 공항으로 설정하길 추천한다. 산타크루즈는 발트라공항(GPS), 산크리스토발은 산크리스토발공항(SCY)가 있다. 인아웃 같은 왕복표가 더 싸긴 하지만 중간에 섬 이동하는 뱃삯 더하면 그게 그거다.

5. 에콰도르는 의료비가 무료다. 다른 도시에선 확인 안 해봤지만 산크리스토발, 산타크루즈 섬의 대형 병원은 진찰, 처방이 모두 무료였다. 다쳤거나 몸이 좋지 않다면 꼭 병원에 가자.

6. 산타크루즈 중심가를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Banco Pacifico은행 앞에는 벤치와 쉼터 같은 게 있다. 여기서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하다.

7. 빨래 시세는 산크리스토발이 더 싸다. 
핀존에서 스노클링 하는 사람들. 201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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