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는 평균적으로 2주에 한번 정도는 물자 공급과 폐기물 처리를 해야 한다. 3월 15일 시드니에서 쫓겨나 호주 영해를 떠돌던 우리 배는, 4월 7일 브리즈번에서 겨우 힘겹게 언제 다시 가능할지 모를 물자 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호주와 뉴질랜드의 국경 봉쇄로 인해 또다시 갈 곳을 잃었다.
우리 배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세균 배양판 취급을 당한 크루즈 300여 척은 갈 곳을 잃었고, 4~5월까지만 운항 중지를 발표했던 선사들의 운항 중지 연장에 관한 발표가 잇달았다. 그로 인해 선사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승무원들을 본국에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크루즈는 다국적의 승무원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다문화 환경이다. 내가 근무한 퀸 엘리자베스만 해도 당시 152개의 국가에서 온 승무원이 총 975명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 다국적 승무원의 승하선을 위하여, 공항까지의 차량과 자국까지의 항공편을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배가 갈 곳조차 없는 상태에서 승무원의 본국 송환을 준비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부분과 변수가 너무 많고 복잡했다.
우선 하선 및 송환할 수 있는 항구를 찾아야 했고, 찾았다고 해도 해당 국가와 항구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에 따른 비자 및 해당 국가의 방역지침, 그에 따르는 모든 비용까지도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모든 조건을 고려하고 변수까지도 가늠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곳을 찾아 협상해야 했다.
그 모든 과정을 거듭하여 4월 19일, 우리 배가 겨우 힘겹게 간 곳은 필리핀이었다. 당시 총 승무원 975명 중 필리피노는 635명이었다. 그중 최소 운영 인원을 제외한 532명을 먼저 송환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36일 동안 바이러스 감염자는 물론 없었고, 그 어떤 바이러스와의 접촉 가능성조차도 없었지만, 필리핀이 당시 제시한 조건은 14일 선내 개별 격리 후의 하선이었다.
약속되었던 하선 날짜 하루 전, 나를 포함한 20여 명의 동료가 2천 개에 이르는 짐을 일일이 회수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그들의 하선은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었고, 격리되어 집에 가기만을 기다렸던 동료와 그들의 하선을 준비한 우리 모두가 굉장히 실망한 날이었다.
실제로 약속한 선내 격리 14일이 훌쩍 지나 25일이 지난 5월 14일, 한 필리피노 바텐더가 바다에 빠지면 나를 구하러 올 터이고 그러면 육지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집에 가기 수월해질 터이니 객실의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버릴까 하는 충동을 혼자 이겨 내기 너무 힘들어 구조를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그는 이후 자발적 요청에 의한 24시간 시큐리티 요원의 감시 하에 선내 격리 45일이 지난 6월 3일에 하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 약속받았던 선내 격리 14일은 45일에까지 이르렀다. 일방적으로 필리핀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수차례 약속이 무산됨으로 인해 많은 갈등을 빚었지만 떠날 수도 없고 안 떠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는 필리핀 외 다른 국적 승무원의 송환 작업도 진행해야 했다. 해상 격리 63일이 지난 5월 17일, 33명의 영국인과 독일인의 본국 송환을 성사시키며 본격적인 송환 작업을 매일같이 진행했다. 5월 29일에는 마닐라만에 함께 정박해있는 계열사와 협력하여, 국가 차원에서 상용 비행기를 일제히 거부한 사우스 아프리칸과 짐바브웨이안을 위해 전세 비행기를 마련하여 송환했다. 6월 6일에는 계열사 홀랜드 아메리카 선사의 엠에스 유로담으로 계열사에 있는 모든 인도네시안을 배에서 배로 이동시켜 전세 크루즈로서 인도네시아에 직접 송환했다. 6월 15일에는 전세선이냐 전세기냐 말썽이 많았던 인디안을 전세기로 송환했다.
우리는 수시로 바뀌는 해당 국가의 국경 봉쇄 및 방역지침, 항공편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매일같이 송환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우리 배와 함께 마닐라만에 정박했던 크루즈가 4척뿐이었는데, 나중에는 어느덧 32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마닐라만 정박 103일 만인 6월 26일, 우리는 드디어 우리 배의 모항인 영국 사우스햄튼으로 향할 수 있었다. 975명이었던 승무원은 당시 최소 운영 인원만을 남긴 153명뿐이었다.
그렇게 버림받았던 우리들은 힘겹게 하나하나 갈 곳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