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배는 영국 사우스햄튼으로 향하는 길에 남중국해를 지나면서 거제 조선소에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제1호로 명명됐던 HMM(구 현대상선)의 알헤시라스를 만났다.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 정박하여 물자 공급을 받았고, 보다 짧은 항로를 위해 해적 위험지역인 아라비아해의 아덴만을 지나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를 대비해 훈련을 받았고, 무사히 위험지역을 빠져나와 모세의 기적을 상징하는 홍해를 지났다. 이후, 1869년 완공되기까지 12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1956년 이집트가 국유화하기까지 소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해양사뿐 아니고 인류의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닌 세계 최대의 운하인 수에즈 운하를 지났다. 그리고 끝으로 지중해를 거쳐 우리의 퀸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고향 영국 사우스햄튼에 도착했다.
나는 언제가 될지 도통 모르겠는 크루즈 정상 운영을 대비한 내용까지 포함한 인수인계 노트를 만들었다. 나와 함께 하선하는 동료들의 송환 작업, 그리고 새롭게 승선하는 동료들을 위한 승선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그렇게 나의 하선 날짜 7월 25일 하루 전 오후 4시경, 모든 상황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했던 나는 298일 동안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크루즈 승무원은 열두 달 중 휴가 기간 한두 달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은 배에서 일하고 생활한다. 그 긴 기간을 모국에 있는 가족 없이 지내는 대신 배에 있는 뱃가족과 지낸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뱃가족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격리 중 생활했던 발코니 객실과 격리 전 생활했던 내 방에서 짐을 들고 나오면서, 떠나는 발길이 참으로 착잡했다.
10개월의 이번 승선 기간 중 첫 5개월은 BC(비포 코로나)였다. 승객에게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리조트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즐기며 전 세계의 기항지를 만끽하는 크루즈였다. 승무원에게는 끊임없는 단골 승객을 접객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며 짬짬이 기항지를 즐기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다문화 업무환경의 일터이자 제2의 집이었다.
BC 이후의 5개월은 DC(듀링 코로나)였다. 대다수의 승객에게는 다시 탈 수 있는 날이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그리운 크루즈이지만, 소수의 승객에게는 타고 싶지 않은 위험천만한 세균 배양판 같은 크루즈가 되어버렸다. 승무원에게는 생계 및 꿈을 빼앗긴 채 제2의 집에서 진짜 집에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만 했고, 그리웠던 진짜 집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하루하루 버티며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그날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DC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이후에는 언젠가 AC(애프터 코로나)가 찾아올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코로나 종식 후의 삶이다. 서구 국가에서는 크루즈가 문화로서 확실히 자리한 지 100여 년이다. 쉽게 무너질 업계도 아니며 사라질 업계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크루즈 선사와 관련 업계가 다시금 정상적으로 운영되기까지는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고충이 따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착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크루즈 166일, 해상 격리 132일, 지상 격리 14일을 마치고 312일 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