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46일 차>
46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11일 차) - 4월 30일
지난 4월 6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거진 한 달 만에 식량 및 생필품을 공급받았었다.
평소 같으면 1~2주에 한 번꼴로 있는
지극히 평범한 Restoring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려 24일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단 항구에 접안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Restoring 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필리핀이 허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하지 않은 광경을 사진으로 남겨보고자
오픈덱으로 올라갔다.
이날도 여전히
주변에는 크루즈가
저 멀리에도 크루즈가
더 멀리에는 밟아보지도 못하는 육지가 보였다.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카메라로 10배 줌을 해봐도 뿌옇게만 보이는
빌딩 숲을 육지를 볼 때면
일단은 안전하게 배에 있는 것으로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육지를 밟고 싶은
한동안 배로 못 돌아와도 괜찮으니 집에 가고 싶은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래 봤자 언제 어디서 집에 갈 수 있을지
아무도 뭐라고 말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또다시 나의 안전에 가족의 안전에 감사하며
오늘을 웃으며 보낼 수밖에 없다.
어디로 어떻게 해서 물건을 들이는 건지
혹시라도 놓칠까 봐
난간 밖의 바다만 살펴보며
오픈덱을 360도 걸어 다녔다.
작은 통통배 같은 녀석이
커다란 판자 같은 것을 질질 끌고
저 멀리에서 나타났다.
뭔가 나름 잔뜩 실려있다.
항구에 접안하게 해 주면
참으로 간단할 것을
굳이 이런 번거롭기 그지없는 선택을 해야 했을까.
나를 포함한 몇몇 크루들은
오픈덱에서 발코니에서 구경하느라 정신없는데
식음료와 호텔 스토어 부서의 담당 크루들은
배 밑에서 완전무장을 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오픈덱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나는 마닐라 날씨다.
하물며 그들은
옷을 입고
그 위에 점프 수트를 입고
장갑과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배와 배 사이를 연결한 판자에 의존하여
물품을 하나하나 일일이
배 안으로 들이는 것이다.
얼마나 찌들듯이 덥고 힘들까.
오후 4시경에 시작된 Restoring.
언제쯤 끝날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마무리는 못 보겠거니 단념하고
저녁 배달과 수거를 하러 갔었다.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저녁 8시
혹시나 해서 창문을 확인해보니
아직도 물건을 들이고 있었다.
모든 작업은 저녁 9시반이 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모두들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