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47일 차>
47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12일 차) - 5월 1일
2019년 10월 4일
영국 사우스햄턴에서 승선해서
새로운 컨트랙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2020년 4월 12일
승선한 상태에서
컨트랙을 마치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중 베케이션을 맞이했기 때문에
귀국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18일 동안
한국에서 집콕이 아닌
퀸 엘리자베스호 선상에서 크루즈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필리피노 크루 선내 격리로 인해
산더미처럼 불어난 일거리를 돕고자
자원봉사를 자처하고 나서서는
하루에 평균 5시간 정도 일을 했다.
그러니 18일 베케이션이 아닌
18일 무급 근무를 한 셈이다.
무급 근무 18일째 되는 날
대빵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베케이션이 끝났으니
당장 내일부터 유니폼 입고 출근하라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Essential Manning으로서 나를 뽑았다는 것이다.
에센셜 매닝은
모든 크루가 하선할 때까지는 물론
그 이후로도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나
그 언제까지가 결정될 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배에 남아있어야 하는
배 운영을 위한 최소 인원을 뜻한다.
이 혼잡한 사태 중
선사에 한 명밖에 없는 한국인을
우선적으로 귀국 조치해줄 가능성은 만무하다.
이후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르는 채
집에 가지도 못하고 배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집에 갈 수 있다면야 기꺼이 기쁘게 가겠지만
가면 가는 대로
다시 언제 배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크루는
에센셜 매닝이 되었다고 속상해한다.
리셉셔니스트 10명 중 단 2명만 에센셜 매닝이다.컨트랙이 끝나지 않은 동료들도 있었는데
대빵 매니저는 굳이 컨트랙이 끝난 나를
번거롭게 다시 불러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샐러리를 받으면서
하루라도 더 많이 일하는 것이
감사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2020년 5월 1일
18일 동안의 선상 베케이션을 마치고
세 번째 컨트랙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4월 13일 컨트랙을 마칠 때에는
다음 컨트랙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 직장을 잃은 것 같은
굉장히 불안하고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에센셜 매닝이 된 지금은
조금이나마 안정되고 홀가분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