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29~30일 차>
29일 차 - 4월 13일
BUT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다..;;
평소 같으면
컨트랙이 끝나면 물론 바로 귀국한다.
그리고 집에 가면
적어도 3일에서 길게는 7일 정도까지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집밥 먹으며
TV 보면서 집에만 있는다.
하지만 이번 베케이션은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집밥도
스트레스 없이 한국어로 보고 들을 수 있는 TV도
같이 있고 싶은 엄마도
만나고 싶은 친척도 친구도 없다.
그냥 평소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못한다.
그대로 배에서 생활해야 하는 건 변함없고
그냥 유니폼을 입을 일도
오피스에 갈 일도 없을 뿐이다.
그렇게 이상한 기분으로 오픈덱을 걷다가....
결심했다!!
브런치 再開
수첩에만 끄적거리는 거 말고
크루즈에 대해 크루즈승무원에 대해
뭐든 써나가 보자 다짐하며
2018년에 가입해서 딸랑 글 2개 올려놓고
계속 미루기만 하던....
그 브런치다.
평소에는 기록용으로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 포스팅만 한다.
엑스트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부담스럽고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계속 미루기만 하고
수첩에 끄적끄적거리기만 했던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완성해보기로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배에 있으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가족도 친구도 못 만나고
가고 싶은데도 못 가고
집 밥도 못 먹는데
이 시간을 보람되게 가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그런 강박으로부터 온 결심이다.
30일 차 - 4월 14일
반짝이는 바다는 이렇게 예쁘기만 한데
바다에서 쓰는 와이파이는 나를 힘들게만 한다.
나의 결심을
하루에도 수천만 번씩 흔들어대는
이 놈의 느려 터진 와이파이....
직접 써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말아라.
메시지 하나 보내는데도 몇 초가 걸린다.
사진 하나 보내려면
전송해놓고 핸드폰은 한참 나중에 확인한다.
노래나 영화 다운로드는 꿈도 못 꾼다.
그나마 그런 와이파이 연결조차 안 될 때도 있다.
그런 와이파이로 브런치를 업데이트하자니
아침에 완성한 글을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겨우 업로드 완료가 될 때도 있으니
이야말로 인내심 테스트가 따로 없다.
몇 퍼센트 완료되었나 확인하느라
취소하고 수십 번을 재차 시도하느라
손에는 항상 핸드폰과 휴대용 배터리가 함께다.
왠 놈의 케라스타즈 린스냐.
헤어 및 바디 제품은
평소에 마트나 드럭스토어에서 구매하는 나에게,
배 생활 시작하고 3년 넘게 헤어컷 정도는
숱가위로 직접 하게 된 나에게,
헤어 살롱에서 파는
5만 원도 넘는 게 고작 200ml 뿐인 린스가
구매하고 싶은 제품일리가 없다.
하지만 선내 헤어 및 바디 제품이
다 품절되어버린 상태에서
선택권이 없었다.
비싼 이 놈 조차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곧 살롱이 문을 닫게 되니
그나마도 오늘 사지 않으면
언제 하선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린스 없이 머리를 감아야 한다.
고민하며 살롱으로 향했다.
인맥의 힘 ㅎㅎ
반값 정도 주고 구매했다.
생각보다 할인 많이 받았는데
다시 돌아가서 샴푸도 에센스도 사놓는 게 좋을까
나중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머리 감나
그런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며 바라본 일몰도
참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