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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May 05. 2020

크루즈에도 사재기가 존재한다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33~34일 차>


33일 차 - 4월 17일



아침에 캡틴이 방송하기를

선물 줄 테니 다 나오란다!


선사에서 항상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전 승무원에게 선물을 주는데,


이번에는 앞당겨서

필리피노 크루가 내리기 전에 주는 듯했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은

가방, 파우치, 텀블러, 크리스탈 지구본, 패딩 조끼, 티셔츠, 망원경, 휴대용 스케일, 휴대용 배터리 등등

꽤 퀄리티 좋은 물건들이다.


물론 큐나드 로고 박힌 ㅋㅋ



이렇게 항상

SMT (Senior Management)가 나와서

직접 선물을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하며 나눠준다.


제일 왼쪽부터

HR Manager

Hotel General Manager

Cheif Engineer

Deputy Captain

Captain

HR Manager



이번에 선물로 받은 것은

모자, 카드 지갑, 요전에 찍은 바베큐 단체 사진


물론 큐나드 로고 박힌 ㅋㅋ


평소보다 조금 부실한 선물이긴 하지만,

격리 생활 중의 위로 선물로

급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알기에

이조차도 고마운 일이다.



이날은 면세점이 마지막으로 오픈하는 날이었다.


물론 Shop Manager가

나의 가장 친한 게이 친구 안쏘니의 남자 친구라서

정 급하면 부탁해서 살 수 있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사재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언제까지 배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디샴푸가 반 밖에 안 남았는데

선내에는 더 이상 없는 관계로

대용이 될만한 바디 스크럽이랑

거의 다 써가는 바디로션을 구매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나 또 갈등이다.


충분할까....

천만번을 물어봐도 그 누구도 대답 못할 질문이기에

일단 이 정도 사재기해둔 걸로 안심해야 한다.



이번에는 과자 사재기다.


셋이서 한참을 고민했다.


더 살까....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데

나중에 과자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

달달한 게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

방에 비상용으로 먹을게 없어지면 어떡하지


배 생활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마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육지에 언제 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혹여 배에 물건을 더 들인다 해도

과자나 초콜릿은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 팬데믹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이 과자가 선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마지막 군것질거리이기 때문에


이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ㅎㅎ


셋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적당히만 샀다.


좋다고 인증샷이다 ㅎㅎ






34일 차 - 4월 18일


다음 날인 19일 오전에

마닐라 도착 예정이라고 했는데

늦어진단다.


몇 시가 될지 모른단다.


우리 배 전에 도착했어야 할 3척이

아직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국민만 좀 내려 보내겠다는 건데 거부하는 건지

돈을 더 받아내려고 비싸게 구는 건지


늦춰지는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러다가 국경 닫아버리고

나가라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우리 배는 속도를 더 줄여

마닐라 베이 근처를 맴도는 처지가 되었다.



오랜만에 보이는 육지가 참 반갑다.


내릴 일은 없겠지만....


반갑다, 육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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