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113~114일 차>
113일 차 - 7월 6일
예정되어있던 이틀 동안의 안전훈련이다.
먼저 이날은 평소에도 2주에 한 번씩 항상 하는
기본적인 비상대피훈련을 했다.
과정은 항상 거의 비슷하다.
First Response
보통 화재 비상사태 신호로 시작하여
화재진압팀이 먼저 출동한다.
화재진압이 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Crew Alert
크루 전원이 각 포지션으로 집합한다.
전원이 포지션에 있는지 확인한 후
화재진압이 되었다는 가정하에 집합 해제하거나
Abandon Ship
화재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가정하에
배를 탈출하는 최종 플랜을 진행한다.
원래 포지션을 벗어나
지정된 구명보트 포지션으로 다시금 집합한다.
전원이 포지션에 있는지 확인한 후
훈련은 종료된다.
짧으면 30~40분, 길면 60분 정도 소요된다.
지금은 어차피 기항지조차 없으니 외출도 못하지만
평소에는 기항지에 정박했을 때에
대부분의 승객이 내린 이후에 하기 때문에
크루들의 외출 시간이 짧아져서 다들 싫어한다.
짧든 길든 좋든 싫든
크루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배든 비행기든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114일 차 - 7월 7일
이날은 선박 피랍 대비 훈련
즉 해적 대비 훈련을 했다.
해적이라니....!?!?!?!?
해적 대비 훈련은 평소에는 하지 않는다.
Arabian Sea, 아라비아해의
Gulf of Aden, 아덴만을 지나기 때문이다.
아덴만은 2019년에만 6건,
2020년 현재까지 만으로 8건의
해적 관련 사건이 보고된 해적 위험지역이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화물선 선원들을 한국의 청해부대를 중심으로 진행된 구출작전인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물론 해적은 크루 인원이 훨씬 적은
화물선을 주로 타겟으로 하여 하이잭 한다고 한다.
크루도 많고 승객도 많은 커다란 크루즈선을
컨트롤하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험지역을 지나는 만큼
특히나 지금은 153명 밖에 없으니
혹시 모를 일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했다.
해적 대비 훈련 이외에 배를 돌아다니면서
배의 모든 창과 문의 커튼을 닫거나
검은 시트나 종이판으로 가렸다.
배 안의 불빛이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즉 해적이 우리 배를 보기 힘들게 하기 위함이다.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캡틴이 신호를 주면
선내 모든 오픈덱의 불빛은 끄고
모든 실내 장소, 우리들의 방 발코니 커튼까지
철저하게 닫아 협동하여 대비하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도 아끼고 있는데
배에서 나가는 빛뿐만이 아니라
들어오는 자연빛까지 차단하니
진짜 유령선이 따로 없다.
이외에도 시큐리티팀에서 경계를 더 강화하고
항상 입는 하얀색의 유니폼 대신
검은 유니폼으로 바꾸어
어둠 속에서 순찰을 돌아도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또한 앞뒤로 미국군과 영국군의 호위대도 있다.
만일의 경우에는 그들이 도와줄 수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대비도 했고 보디가드도 있으면서
사실상 해적이 우리 배에 올 가능성은 적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빛 말고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픈덱과
유령선 같은 실내를 보고 있자니
괜히 오싹한 것이 겁까지 났다.
다음날인 7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 동안 해적 위험지역을 지나게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님 지나가신다~
해적, 저리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