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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Jul 13. 2020

셀프 헤어컷으로 긴 머리 잘라내기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115~116일 차>


115일 차 - 7월 8일


아라비아해에 들어서면서

날마다 세찬 바다 소금 바람이다.


심할 때에는 오픈덱에 나가면

바람에 날아갈듯해서 못 나갈 정도이다.


보통은 거의 이런 잔잔한 바다
지금은 이런 약간 거친 바다


물론 다들 도가 튼 크루들이지만

너무도 길게 배에만 있어서 지쳐서 그런 것일까.


더 심하게 배가 흔들리는 Rough Sea도 있었지만

네 달 동안 잔잔한 바다에만 있어서 그런 것일까.


두통과 뱃멀미를 호소하는 크루들이 속출했다.


내 발코니에서 보이는 Rough Sea
오피스에서 보이는 Rough Sea
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용어


소금 바람이 얼마나 불든

배가 얼마나 어떻게 흔들리든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그저 멀쩡하기만 했다.


예전에 속초에서 페리선을 탔을 때에

전후좌우상하로 배를 몽땅 흔들어대는

Rough Sea를 경험했을 때도

나는 그저 멀쩡하기만 했다.



세찬 물결의 바다 위에 흔들리는 배보다는

작지 않은 머리통에 붙어있는 긴 머리카락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하루였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가위를 들고 말았다.


이번 컨트랙을 위해 지난 10월 4일에 승선한 이후

279일 동안 벌써 세 번째 되는 셀프 헤어컷이다.


지난 2017년 첫 승선​을 준비하면서

왠지 머리 자르는 가위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숱가위를 사서 들고 갔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부터 헤어컷은

캐빈에서 거울 보고 뚝딱 혼자서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평소에 유지하는 길이보다 짧게 하고 싶어

좀 많이 잘라볼까 하며 싹둑 잘라버렸다.


가위를 놓고 나니 너무 많이 자른듯했다.


어쩌지 하며 거울을 보고 있는데

벌써 바텐더​ 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뒷정리도 못한 채 대충 묶어 버리고 방을 나섰다.







116일 차 - 7월 9일


아침 식사 마친 시간,

내비게이션 채널을 틀어보니

엘리자베스가 아덴만​에 들어서는 중이었다.




발코니로 바깥을 내다보아도 물론 해적​은 없다.


그저 평소와 같아 보이는 바다가 보일 뿐인데

피랍​될 일은 없나 괜히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런 기분도 잠시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셀프 헤어컷에 집중한다.


짧아진 머리를 곱게 고데기로 피니

머리 끝이 삐뚤빼뚤한 데다가 안쪽 머리가 더 짧다.


대충 안쪽 머리에 맞춰 이상해 보이지만 않게

머리 끝을 정돈해서 마무리했다.


이번 컨트랙 중에만 세 번째 잘라내니

한 번도 안 잘랐으면 골반 넘게까지 길었을 듯싶다.


후회는 안 하지만 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여기 있는 152명이 자세히 내 머리카락을 쳐다보고

이상하다고 할 일은 전혀 없다.


내 머리 어차피 나만 제일 신경 쓴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다시 자란다.


승선해 있을 때에는 대충 셀프 헤어컷으로 때우지만

한국에 가면 항상 먼저 가는 곳은 미용실이다.


매직이든 웨이브든 염색이든

온갖 헤어 화학제품을 죄다 쏟아붓고 싶다.


6년 동안 유지해온 긴머리 in 한국 & 미국
지난 컨트랙
이번 컨트랙
NOW!!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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