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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Jul 09. 2020

111일 만에 먹는 초콜릿의 맛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109~112일 차>


109일 차 - 7월 2일


110일 차 - 7월 3일


점심시간 이후부터

와이파이가 슬슬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접속조차 안 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와이파이가 없는 세상,

IT 강국의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시대에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배는 위성 신호를 받아 와이파이를 사용하는데


저녁 시간이 다되어서야

당장 고치지 못하는 이유를 내놓았다.


굴뚝이 그 신호를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큐나드의 심볼인 빨간 굴뚝을 말하는 것인가?


신호를 받는다는 동그란 안테나를 말하는 것인가?


그 무엇이 되었든 배에 있는 모든 것은

조선소님께서 엘리자베스님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때부터 있었던 것인데......??



와이파이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


그 누구와도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는 구글 검색을 할 수 없다.

버릇처럼 접속하는 SNS를 확인할 수 없다.

브런치에 접속이 안되니 글을 수정할 수 없다.

준비하고 있는 블로그를 수정할 수 없다.

어플로 다운로드한 책을 읽을 수 없다.

내비게이션 어플로 배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사전 어플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뱅킹 어플로 입금된 월급을 확인할 수 없다.


다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많이 답답했지만 지낼 만은 했다.


오피스와 데스크의 구석구석을 닦고 정리했다.

업무 다이어리를 읽으며 지난 에피소드를 정리했다.

친구들이랑 모여 앉아 보드게임하며 떠들었다.


나름 참을만한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참고 싶은 불편함은 아니었다.






111일 차 - 7월 4일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해보았지만

와이파이는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은 동시에 오는 법!


아주 반가운 일이 일어났다.


오후에 감자칩이랑 초콜릿이 온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캡틴이 크루들을 위해 특별하게 요청하여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들인 것이었다.


개별적인 주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사 차원에서

필요한(?) 식량으로서 주문한 것이다.



그리하여 크루가 원하면 구매할 수 있도록

귀한 물건을 우리 오피스에 모시게 되었다.


서둘러 주문 용지를 만들었다.


이 반가운 소식이 퍼지기 무섭게

주문 용지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크루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 15일 시드니​ 땅을 밟은 이후로

111일 동안 배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바이러스 득실득실한 육지가


크루즈를 전 세계적으로 세균 배양판 취급해서

 

바이러스 프리한 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의 자유 따위란 매우 사치스러운

매우 한정적인 음식물을 섭취해왔다.


크루 메스에서 나오는 메뉴 중에서만 먹을 수 있고

크루 바에서 판매하는 음료 중에서만 마실 수 있고

군것질거리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버튼만 누르면 먹을 수 있는 쌀밥이

냄비채 데우기만 하면 되는 애호박 새우젓국이

냉장고만 열면 있는 김치와 갖가지 반찬이

돈만 내면 내 입에 넣을 수 있는 수많은 음식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조차 없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평소 같으면 잘 먹지도 않는다는 것과

네 달이 다되도록 먹을 기회 조차 없다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감자칩, 초콜릿, 젤리를

매니저들이랑 다 같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먹었다.






112일 차 -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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