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79~83일 차>
79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44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1일 차) - 6월 2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검사 결과와 함께
필리피노 격리 크루 15명이 하선한 날이다.
멕시칸 1명, 브라질리안 1명, 오스트리안 1명,
타이 랜더 1명, 포루트기스 4명, 폴리시 4명,
나를 뷰티풀이라 하는 이탈리안 드러머 지아니랑
베이스 기타리스트 피에트로까지 포함하여
총 29명이 하선했다.
최다 국적이 하선한 날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저기 참 많은 나라에서 집 떠나 배로 와서
이제 드디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Travel safe and hope to see you again :-))
나의 생일 파티 다음 날
어처구니없게도 DJ 바비의 행오버 고열이
코로나 의심 증상이라 간주되어 격리당한
총 11명의 크루가 COVID-19 검사를 받았다.
이전의 532명의 격리는
필리핀의 요구 조건이었기 때문에
구역별 공기 차단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11명의 격리는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인한 격리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공기까지 차단하여 진행했다.
80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45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2일 차) - 6월 3일
45일이 되도록 아직까지도 기다리던
나머지 26명의 필리피노 격리 크루가 하선했다.
드디어 532명 격리 크루의 하선이 완료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필리핀 측에서 잃어버렸다는
그 검사 결과를 찾아서 하선한 것이 아니고,
길어지는 선내 격리를 어떻게든 끝내 보고자
마닐라의 격리 시설로 이동하여
다시 새로운 검사를 받는 조건으로
필리핀과 합의하여 하선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피해보상청구라도 하고 싶은 심경인데
합의라....
그들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르는 비용은 선사 부담이라고 한다.
크루를 가족의 품에 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하는 또 다른 갑질이렸다.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약속받았던 14일이 훨씬 지난 45일 차에라도
532명 하선을 완료할 수 있었던
우리 모두에게 나름 굉장히 의미 있고 기쁜 날이다.
이날은 아메리칸 1명을 포함하여
총 27명이 하선했다.
81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3일 차) - 6월 4일
마닐라 베이에 있는 모든 크루즈선이
크루 하선을 위해 매번 텐더링 오퍼레이션을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각 배가
각자 알아서 텐더 보트를 항구로 보내는데,
때로는 크루를 다른 배로 트랜스퍼해서
함께 모아서 항구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우리 배에서 아메리칸 1명이
프린세스 크루즈의 배로 이동하여
그 배의 텐더 보트를 타고 하선했다.
평소와 비교하자면 굉장히 여유로운 업무이지만,
매일 하선 작업 돕느라
배달 및 수거 등의 엑스트라 업무 하느라
뭐 조금이라도 더 써보느라
나는 나름 굉장히 매일을 바쁘게 보내는데..
친구들이 자꾸 오피스로 놀러 온다.
내가 심심해할까 봐 놀아주려고 오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보드게임을
하루에도 몇 번씩 플레이하는 중이다.
계속하다 보니 꽤 괜찮은 서구 문화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마치기 위해 한두 시간을 함께 하는데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나를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꽤나 괜찮은 소셜라이징 도구라고 할까.
한국에 가면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함께 해보고 싶을 정도이다.
82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4일 차) - 6월 5일
나의 생일 파티 다음 날
어처구니없게도 DJ 바비의 행오버 고열이
코로나 의심 증상이라 간주되어 격리당한
총 11명의 COVID-19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역시 또 늦어졌다.
이 나라.. 약속한 날짜를 시간을 지키는 적이 없다.
덕분에 예정되어 있던
인도네시안 3명의 Ship Transfer가 취소되었다.
Carnival Corporation 브랜드끼리 서로 도와
인도네시안 크루는 항공편이 아닌 배편으로
크루들을 귀환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리 배에 있는
3명의 인도네시안 크루를 트랜스퍼해야 하는데
검사 결과가 늦어지는 바람에
트랜스퍼가 미뤄진 것이다.
덕분에 우리 배에서도 다른 배에서도
모든 인도네시안 크루가 기다리게 되었다.
83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5일 차) - 6월 6일
오랜만에 일출 사진을 찍으러
출근 전에 오픈덱으로 올라갔었다.
이날은 보디빌더 마냥 운동을 매일 미치도록 하는
40대 바텐더 마코와
항상 인자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진짜 착한
60대 소믈리에 마코를 포함한
7명의 세르비안이 하선하는 날이었다.
하루 늦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격리 크루 11명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물론 예상했던 대로 음성이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안 크루의 트랜스퍼를 진행할 수 있었다.
홀란드 아메리카 라인 배의 엠에스 유로담이
천여 명의 인도네시안 크루를 태우고
자카르타로 가서 귀환시키고자 하는 계획이다.
두 달이 넘게 배에서 격리되어 고생해온 크루들이
무사히 자국에 도착하기를
가는 길에도 도착해서도
더 이상의 드라마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인도네시안 크루를 트랜스퍼한 배들끼리
유로담을 배웅하면서 경적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인도네시안 크루들의 트랜스퍼도 무사히 마쳤으니
음성결과를 받은 크루들의 격리 해제만 남았다.
라고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며 기대하며
오피스에서 닥터콜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닥터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르는 일이니
크루 전원의 안전을 위하여
14일 격리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팀은 보스 로넬의 부재로 인해
계속하여 연장 근무를 하게 되었고,
하선이 예정되어 있던
브라질리안과 브리티시 크루는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3월 16일부터 시작된 975명의 코로나 격리 항해.
83일이 지나 그중 650여 명이 귀환에 성공하였고
앞으로도 100여 명의 귀환을 계획하고 있다.
모두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
나도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
WE ARE IN THIS TOGETHER!
WE WILL GET THROUGH THIS 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