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64~65일 차>
64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29일 차) - 5월 18일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드는 첫 생각은
오늘은 격리 크루들이 하선할까 이다.
이날 아침도 같은 생각을 하며 6시에 출근했다.
격리 크루의 COVID-19 검사 결과가 나왔단다.
검사 결과증은 직접 받는 것이 아니고
필리피노 Manning Agency를 통해서만 받는다.
원래 필리피노 크루들은 고용 및 승하선을 위해
항상 매닝 에이전시를 통한다.
어느 배나 필리피노 크루가 넘쳐나기 때문에
선사가 직접 크루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매닝 에이전시에 맡겨서 일을 분담하는 것이다.
Bureau Of Quarantine에서 채취한 검체를
Philippine Red Cross에서 검사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매닝 에이전시에 넘기면
에이전시에서 확인하고 배로 보내주는 것이다.
지난 5월 8일에 예정에도 없던
COVID-19 검사를 했다.
검사를 하는건 이해한다 치고
어디를 통하든 다 절차가 있다 치고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그 결과가 우리 손에 오는데까지 10일이나 걸렸다.
여기서 한술 더 떠 더 황당하고 어이없는건
마닐라에 도착해서 532명이 방한칸에 격리되어
총 29일을 기다렸는데
262명의 검사 결과만 온 것이다.
도대체 업무 처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검사 결과증은 격리 크루의 방에 배달해야 한다.
이름를 확인해가며 방 번호를 적어 나갔다.
뭔가 움직이는듯해서 창문 밖을 내다봤더니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시야에 들어온 것이었다.
더럽다.
빨리 다 하선시키고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
262명의 검사 결과증과 함께
하선 절차에 대한 안내,
매니지먼트가 준비한 응원 카드를 배달했다.
더 복잡한 일은 짐을 찾아 분리하는 일이였다.
532명이 다같이 하선할 줄 알고
귀가 교통편에 맞춰서 한곳에 보관해놓았었다.
약 2000개의 짐이다.
이 중 262명의 짐만 골라내어야 한다.
격리 크루를 불러내어 짐을 찾아
다음날의 하선 작업을 위해 따로 분리했다.
모든 준비가 또 끝났다.
내일 262명 내리는거 맞겠지.
믿을 수 없는 이 나라, 내릴 때까지 내린게 아니다.
불신에 가득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262명이라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배달과 수거 업무도 반 정도는 줄게 된다며
최대한 긍적적인 생각만하면서
동료들과 오픈덱에서 맥주를 마셨었다.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밖을 내려다 보았더니
쓰레기 수거 배가 아직도 안가고 있었다.
수거 끝난지가 언젠데
우리 배에 딱 들러 붙어서
나무 판자 위에서 잠까지 자고 있다.
미개한 국민이 국가를 계속 미개하게 만들고
미개한 국가는 국민을 계속 미개하도록 방치하고
돌고도는 악순환이다.
65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30일 차) - 5월 19일
This is happeninig!!!!
262명 격리 크루가 진짜로 하선한다.
한 보트에 20명, 마지막 보트에만 22명이 탄다.
하선 작업은 무전기로 서로 연락하며 진행했다.
먼저 3명이 보트 그룹별로 방문을 두드리고
크루가 나올 때 방이 깨끗한지 확인한 후
지정 계단 및 엘레베이터로 안내했다.
모든 계단과 엘레베이터에는
격리 크루가 지정 이동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20명이 각 자리를 지켰다.
짐 보관 장소에서는 해당 그룹의 짐을 꺼내어
격리 크루가 본인 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정렬했다.
나는 왜 많고 많은 포지션 중에 여기로 온 것일까.
이럴 때는 머리 쓰고 몸 쓰면서
빨리 회전시켜야 하는 데에 가야 직성이 풀린다.
누군가가 요령 피우면서 빨리 안하는거나
멍청하게 느려터지게 답답하게 하는건
곧 죽어도 보기 싫으니 내가 해야한다.
빨리 보트에 짐을 싫고 크루를 태워 보내야 한다.
한 그룹이 끝나면 다음 그룹이다.
13 그룹을 빨리 보내고 싶어 모두 전투 태세였다.
방에서 안내를 받고 내려온 크루들이다.
각자의 짐을 찾기 전에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30일 동안 방한칸에 갇혀 있다가
집에 가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짐을 찾아 보트로 이동하는걸 도와주려고
2개의 수트 케이스와 큰 배낭을 맨 크루에게
다 찾았지? 이제 가야해, 도와 줄게 라고 하면
아직 3개를 더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 짐 3개는 기본이다.
최고 9개까지 있었는데 참 신기하다.
지팡이, 분해한 보행 워커,
커다란 스피커, 텔레비전, 전신 거울, 냉장고 등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짐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짐을 다 찾았으면
Laminex/Crew Card (승무원 선상 신분증)을
스캔하고 시큐리티에게 반납한다.
스캔하는 동시에
선내 시스템에서는 하선했다고 표시된다.
텐더 보트는 덱 B라서 한 층 더 내려가야 한다.
격리 크루는 짐 한두개를 들고
안쪽 지정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간다.
나머지 무겁고 큰 짐들은 다른 크루들이
보트와 더 가까운 바깥쪽 계단으로 내려보낸다.
들고 내려갈 수 있는 가방은 들고 가라고 했는데도
자꾸만 안들고 내려간다.
그 많고 무거운 짐들을
남들이 들어주기를 염치없게 바라는건가.
Bring it down with YOU I said!
It is your luggage, NOT MINE!!
큰 소리을 내야 그나마 말을 듣는다.
텐더 보트에 짐을 다 싫고 크루를 다 태웠으면
드디어 마닐라 항구로 출발이다.
한 그룹을 보내면 또 한 그룹을 보내야하고
그렇게 13번을 반복했다.
커다랗고 멋드러진 우리 배를 냅두고
저 조그만한 텐더 보트가 왔다갔다 아주 바빴다.
점심 시간 끝나기 전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침 8시반에 시작한 하선 작업이
11시반도 되기 전에 마무리 되었다.
262명이 드디어 다 내렸다.
추가로 12명의 브리티시 크루들까지 하선하니
이 날만 총 274명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뻐근거리는 몸을 스트레칭하며 오픈덱을 걸었다.
Royal Caribbean 선사의 배
Quantum Of The Seas
뭔가 커다란게 붙어 있는 것 같아
빤히 쳐다보니 빨갛고 커다란 곰이다.
이렇게 사진이 잘 나오면
누가 우리 배 사진 좀 이렇게 안찍어주나 싶다.
좀처럼 내 사진, 내 배 사진 찍기가 힘들다.
이 많은 배들이
전세계를 돌며 여행을 해야하는데
여기서 죽치고 뭐하는건지 싶다.
다시는 못 볼 이 아름다운 광경이
실은 얼마나 슬픈 광경인지
아는 사람만 안다.
코로나 제발 없어져 주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