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62~63일 차>
62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27일 차) - 5월 16일
항공편을 통한 귀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듯했다.
30여명의 크루가 매니저 오피스에서
면담을 하며 항공 티켓을 받아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도
다소 격정적인 사건사고도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견해가 굉장히 달라진다.
귀국 항공편에 대한 견해도 그러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와중에 귀국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항공편으로도 배편으로도
귀국이 힘든 크루가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항공 티켓을 들고 나온 크루들의 반응은 상이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음에 기뻐하며
아직 많이 남은 생필품을 기부하고 싶어하는 크루.
1번 또는 2번이나 갈아타야한다고 컴플레인하며
직항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타기 싫다는 크루.
합쳐서 24시간 이상 비행시간이라며
비지니스석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타기 싫다는 크루.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구나....
이 세상에는 현실 파악 주제 파악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전세계에서 아직도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고
경제적인 타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몇 항공사들은 이미 파산한 상태에서
그나마 항공편이 있고
공항이 운항하고 있고
국가가 자국민의 귀국을 허락하고 있고
그래서 귀국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할 상황이다.
곧 귀국하게 될지도 모르는
재패니즈 엔터테이먼트 호스트 유미와 카오리가
마지막 줌바를 준비했다.
격리된 이후에 62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낮에는 실내에서 저녁에는 실외에서
줌바 클래스를 해왔었다.
그 클래스를 하루도 빠짐 없이 참여한
세계 최고 몸치라고 자부할 수 있는
브리티시 포트 프레젠터 해리가
역시 자리를 빛내 웃음을 선사했다.
곧 귀국하게 될텐데
언제 다시 그들의 선상 줌바를 볼 수 있을까.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는 기쁜 소식인데
다들 마음 한 구석이 복잡하다.
언제 다시 크루즈가 정상 운영될지 모르는 일이니
배를 떠나 집에 가는 것이
계약을 마치고 휴가를 가는 것이
일자리를 잃는 듯한 기분이다.
63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28일 차) - 5월 17일
출근 전에 오픈덱에 올라가보니
육지가 꽤나 가까이에서 보였었다.
어차피 밟지도 못할 육지인데 괜히 반가웠다.
왜 갑자기 가까이 왔나 출근을 해보니
33명이 집에 간다는 것이다.
532명의 격리 크루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지만
그래도 브리티시 32명과 저먼 1명은
하선과 귀국을 허가 받았다는 것이었다.
아침 8시에 온다고 해서
일찍부터 준비하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첫 하선이라 다들 더 많이 긴장한 상태였다.
역시나 이 나라 시간 약속은 무시하고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BOQ (Bureau Of Quarantine, 검역국)가 왔다.
하선 절차로서 지금은 가장 중요한 첫단계이다.
BOQ에서 담당자가 승선해서
하선할 크루를 직접 면담 및 체온 검사를 한 후
하선 허가증을 발급해준다.
이게 없으면 하선해도 공항에 가도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서류 중 하나이다.
허가증을 발급 받으면
크루 오피스로 가서 선상 어카운트를 정리하고
선사의 각종 하선 서류를 받는다.
모든 서류는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
이후 모든 짐을 시큐리티 감독하에 스캐닝하고
텐더 보트를 30분 정도 타고
마닐라 항구로 가는 것이다.
텐더 보트????
이 나라 참으로 친절하게도
항구 정박비를 꽤나 비싸게 부르는 모양이다.
선사에서 공식적으로 해준 말은 아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닐라 베이에 있는 대부분의 크루즈선들은
편하지만 비싼 정박비 대신
불편하고 복잡하지만 돈이 덜드는
텐더 보트를 선택한 것이다.
평소같으면 120명 정도는 태우고 갈텐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짐을 고려하여
33명은 2개의 보트로 나누어서 태웠다.
이날은 20분 정도의 텐더링이었다.
마닐라 항구에 도착한 크루들은
이민국 검사를 받은 후
미리 준비된 공항행 교통편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이 다시 문을 닫았을 수도 있고,
항공편이 갑자기 취소됐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배로 다시 돌아와야하는 경우도
우리 입장에서는 대비해야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그 비행기가 이륙해서 각 나라에 착륙할 때까지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잘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그저 이상한 기분이었다.
격리 22일 후 브리즈번에서 3명이 하선했었다.
그때랑 이날이랑은 또다른 기분이었다.
28일 동안 마닐라에서
질리도록 기다리기만해서일까.
총 63일 동안 972명이 모두 함께
육지 한번 못밟아보고 바다를 떠돌았다.
그 중 33명이 배에서 내렸고 지금은 집이란다.
Take care, be safe,
and see you when I se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