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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May 28. 2020

번개가 치더니 이제는 태풍까지 우리를 막는다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60~61일 차>


60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25일 차) - 5월 14일


오전에 오피스에 있는데 대빵 매니저가

Non-Essential Manning 크루를 다 불르란다.


지난 5월 9일까지만해도

국적에 따라 다른 배로 트랜스퍼한 후

귀국시킬 것이라고 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이다.


5월 16일 이후로 비행기 티켓이 예약되는대로

Port Agent 및 각 정부와 확인해서

귀국시킬 것이라는 업데이트였다.


532명 격리 크루를 하선시킨 후에

진행하려고 했던 268명 비 격리 크루의 귀국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진행하려는듯했다.


믿을 수 없는 필리핀의 대처만 마냥 기다리며

다른 크루들까지 집에 못가는 상황이니

선사 입장에서는 진작에 결정했어야할 문제였다.


나름 아주 오랜만에 있는 좋은 소식에

다들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게 또 무슨 엎친데 덮친격인지....


태풍이 오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마닐라 베이 밖으로 나가야 한단다.


귀국 조치에 영향이 있는건 아닐지

이러다가 운영 재개한 공항이 문을 닫는건 아닐지


기쁨도 잠시 또다시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에 의료 긴급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남자 크루가

지금 당장 의사든 간호사든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불안하게 굉장히 떨리는 목소리로

더이상 묻지 말고 그냥 제발 연결해달라는 것이다.


뭔가 굉장히 느낌이 싸한게

더이상 묻지 않는 것이 낫겠다 판단하여

바로 간호사에게 연결했다.


이후부터 이 남자 바텐더 크루는

24시간 동안 한시도 빠짐없이

2명의 시큐리티 어시스트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무슨일인가 들어보니....

바다로 뛰어 들으면 다들 구하러 올 것이고

그러면 집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자꾸만 발코니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된다는 자신과의 싸움에 지치고 힘들다며

자발적으로 감시를 요청해온 것이었다.


532명 크루의 선내 격리를 시작한지 24일째다.


집을 코앞에 두고

내일이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자유를 빼앗긴채

발코니 달린 방한칸에 감금된지 24일째다.


14일로 끝났어야할 감금이 자꾸만 길어지고 있다.


어찌 힘들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몇 크루즈선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크루가 있다.



마닐라 현지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고한다.


마닐라 베이에 있는 크루즈선에서

2만 8천명의 자국민 크루를

성공적으로 귀가 조치시켰다며

자신들의 공로를 자화자찬하는 내용으로 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날을 기준으로 총 23척의 크루즈선이

필리피노 크루를 귀가시켜보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필리피노 크루를 귀가시킨 크루즈선도 있다.


그래봤자 천명 정도될까.


2만 8천명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면 모를까,

귀가시켰다는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다.


집을 코앞에 두고도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자국민이 배 안의 방한칸에 감금되어

국가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거늘 부끄럽지 않은 것일까.



이날의 태풍과 번개가

우리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대변해주는듯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 .






61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26일 차) - 5월 15일



532명의 격리 크루가

약속 받았던 14일도 지나 26일째 격리되어있으니

배달과 수거 업무는 그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방안에 갇혀있는 이들도 괴롭겠지만

방밖에 있는 우리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자꾸만 길어지는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도

각자 알아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긍정적으로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Thank “YOU”



이날은 배달과 수거가 끝나고

평소에 친하게 잘 지내던 동료들을 위해

쿠키 12통을 사서 직접 방문하며 선물했다.


따지고 보면 자국에서 감금생활을 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상황인 것이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진작에 했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했지만,

지금이라도 꼭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나는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누구에게나 친근한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

나름 누구에게나 친절해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보기도 하지만,

잘 못하는거 하려니  피곤하고 힘들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름 쿨한 캐릭터로

친해지면 그 따뜻함을 알 수 있는

그런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ㅎㅎ


12명 모두가 매우 의아해하고 놀랐었다.




일주일이 넘게 캡틴 잉가의 눈을 피해서

캡틴 잉가 남편 클라우스까지 동원해서

모든 크루가 자원해서

캡틴 잉가의 생일 영상 편지를 제작했었다.

 

회의를 핑계로 캡틴을 불러내어

극장에서 서프라이즈 상영을 했다.


2천명의 승객과 1천명의 크루의

365일 안전한 항해를 책임지는 캡틴.


지금은 안전한 항해뿐만이 아니고

모두의 안전한 귀환과

안정적인 심신까지도 보다듬어야하는 상황이다.


그 짐의 무게가 가장 크리라 생각된다.


호텔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일제히 참견하지 않는 캡틴이 많지만,

캡틴 잉가는 다르다.


지나가다가 뭔가 큐나드스럽지 않은 것을 보거나

보고서를 보고 납득이 안되거나 하면

호텔 매니저를 불러 끝까지 follow up한다.


그렇게 항상 카리스마 있고 엄격한 캡틴이다.


그런 캡틴 잉가가 영상편지를 보고

마이크를 들어 고맙다고 인사하다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캡틴도 사람이다.


이 혼잡스러운 상황을 다 내려놓고

집에 돌아가 편안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만번씩 들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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