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48~50일 차>
48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13일 차) - 5월 2일
필리피노 격리 크루의 하선 준비다.
짐은 언제 어떻게 어디에 놔야 하는지
언제 어떻게 회수될 건지
마지막 쓰레기와 침구와 수건 등은
언제 어떻게 수거될 건지
크루 어카운트 정리는 어떻게 될 건지
남아있는 돈이 있다면 언제 어떻게 돌려받을건지
내야 할 돈이 있다면 언제 어떻게 회수될 건지
언제 어떻게 하선하게 될 건지
하선 이후에는 어떤 절차가 있는지
어떻게 귀가하게 될 건지
등의 모든 정보를 담은 안내문을 만들어야 했다.
귀가 절차는 주소를 확인한 후
지역에 따라 버스 및 비행기를 이용하게 될 건지
호텔로 이동하여 해당 교통편을 기다리게 될 건지
가족이 마중을 나오는 경우인지
등을 확인하여 그룹을 나누어야 했다.
그 와중에 같은 크루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승객처럼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크루들도 있다.
우유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고 하는데
우유로 샤워라도 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설탕은 많이 가져다줘도 자꾸만 더 달라고 하는데
그러다 병에 걸리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이다.
식사 배달 시간에 자고 있어서 음식이 식었으니
새로 만들어 가져와달라고 하는데
음식을 만든 셰프나 배달해준 크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라도
식은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는지 싶다.
방에만 있으면서 세 끼니를 꼬박꼬박 받아먹고도
배가 고픈 건지 뭔가 간식거리를 달라고 하는데
비 격리 크루도 못 먹는 간식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다 달라는 건지
배 안에 머리 안에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싶다.
좀 전에 문 밖에 내다 놓은 물병이
아직도 비어 있다며 빨리 채워 달라고 하는데
532명 물병을 채워주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무거운 물탱크를 끌고 다니는
크루에게 고마워서라도
조금 더 기다려볼 생각은 없는 것인지 싶다.
와이파이가 느리다고 컴플레인을 하는데
와이파이가 상상을 초월하도록 느려서
통화는커녕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조차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 보는 것조차도
모든 것에 어마 무지한 인내가 필요한 이유가
개인적으로는 브런치 업데이트에
어마 무지한 시간을 소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유료 크루 와이파이가 공짜가 되는 바람에
항상 972명 중 850명 정도가 로그인을 하고 있어
평소보다도 훨씬 더 느리다는 것을
그중 반 이상이 532명 필리피노 너네들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컴플레인을 하는 너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건지
도대체가 그들의 수준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전화를 받을 때면
14일 동안이나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있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죄다 싹 다 없어지고
제발 제발 빨리 좀 내렸으면 하고 화가 난다.
49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14일 차) - 5월 3일
하루가 다르게 이웃은 자꾸만 늘어나
이제는 벌써 크루즈선이 13척이나 된다.
아직도 이 광경이 꿈같고 믿기지 않기도 한다.
이 날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픈덱을 걸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굉장히 낯익은 배가 눈에 들어왔다.
음........
응....??
엥????
내가 큐나드에 오기 전
2년 동안 몸 담았던 드림 크루즈 배가
지금 내가 일 하는 퀸 엘리자베스호 옆에
그것도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몇 친구들에게
아직 배에 있는지 메시지를 보내고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금까지도 함께 마닐라에 떠 있다.
힘들었지만 많이 정 들은 배고 동료들이라
너무나도 보고 싶지만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절대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참 묘하고 이상한 기분이다.
50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15일 차) - 5월 4일
매일 아침 10시 그리고 오후 4시에
캔틴이 항상 스피커로 방송을 한다.
지금 사태에 대비해
선사가 준비하고 있는 부분을 공유하거나
일반적인 코로나 팬데믹 정보를 공유하거나
위로와 응원,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이 날은 필리핀 공항의 항공편 운항 중지가
5월 10일까지로 연기되었다는 정보였다.
그로 인해 5월 7일에 계획하고 있었던
항공편을 통한 91명 크루의 하선 또한
무산되었다는 정보도 함께 공유되었다.
모레에 있을 필리피노 격리 크루의 하선에는
문제가 없겠지 하는 걱정과 함께
모두가 실망하고 속상해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