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66~67일 차>
66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31일 차) - 5월 20일
친구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는 나처럼 아직 집에 갈 수 없는
브리티시 샵 매니저 마크이다.
직계가족의 장례 경험이 있는 나로서
상실감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네기조차도 미안한
너무나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사실은 마크가 처음이 아니다.
지병으로 입원실에서 돌아가신
아르헨티니언 쇼어 렉스 스태프 줄리에타의 아버지,
지병으로 자택에서 돌아가신
인디언 바텐더 디퍽의 장모님,
아침에 갑자기 눈을 뜨지 않았다는
세인트 루시안 디제이 바비의 어머니,
66일 동안 이번으로만 벌써
네 번째 되는 크루 가족의 사망 소식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3일에도,
아직 마크와 디퍽, 바비는 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심경을 생각하면
내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 따위는 진정된다.
67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32일 차) - 5월 21일
나의 Mother Ship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는
전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900명이 넘는 필리피노 크루를
전원 하선 완료시켰다는 것이다.
14일 선내 격리가 끝났고
COVID-19 검사도 해서 결과가 나왔고
더군다나 항구에 직접 정박해서
다 하선시켰다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14일이나 늦게 마닐라에 온 배에서
필리피노 크루들이 다 내렸다니..!?!?!?
우리는 532명 격리시켜놓고
검사 결과 기다리면서 계속 고생하다가
30일 만에 텐더 보트로 겨우 262명 하선시켜놓고
나머지 270명을 위해 계속 고생하고 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보스가 열이 잔뜩 나서는 오피스로 들어왔다.
우리 크루들이 왜 못 내리나
여기저기 관계자들을 계속 추궁해보니
검사 결과가 섞여버려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두 귀를 의심하며 들어보니
섞여버린 결과 중에 262명만 겨우 찾을 수 있었고
앞으로 언제 얼마나 더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
그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Philippine Coast Guard의 페이스북에
필리피노 선원 몇 만명의 검사 결과와 함께
풀네임과 집 주소가 공개되었었다.
필리핀은 개인 정보 보호법이 없어서
다른 나라 같으면 절대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
일어났다면 아주 떠들썩해질 만한 일이
미개하게도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언제 다 하선시키고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