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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Jun 05. 2020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68~69일 차>


68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33일 차) - 5월 22일



크루 하선이 있는 날 아침마다

Bureau Of Quarantine이 오기만을

이렇게 배 한 군데 구멍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


반대쪽에서 올 때도 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서둘러 이동하여

다른 구멍을 열어야 한다.



BOQ 하선 허가증 받으려고 기다리는 크루들.


아메리칸 2명, 브라질리언 3명, 브리티시 1명,

캐내디언 5명, 저먼 1명, 재패니즈 8명,


총 20명의 하선이다.



BOQ 허가증을 받고 나온

언제 어디서나 발랄하고 씩씩한 미도리 쨩이다.


재패니즈 뷔페 스튜어드 미도리는

스리랑카와 재팬 혼혈인이다.


남자 친구한테 받은 곰인형을

굳이 일본에 데려가겠다며

그 와중에 귀엽게 마스크까지 씌워놨다.


6개월 동안의 짐인데 야무지게 잘도 쌌다.



다음은 시큐리티 짐 스크리닝을 한 후

텐더 보트를 타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항구 측에서 허가해줘야지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크루들은 항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재패니즈 뷔페 스튜어드 나리가

남자 친구랑 마지막 인사 중이다.


조그맣고 귀여운 둘이서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영어로도 일본어로도 말이 통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정들고 친해진 동료들이다.


 엔터테이너 호스트 유미와 댄서 유미카,

뷔페 스튜어드 나리, 마호, 미도리,

리셉셔니스트 미키와 하나코,

쇼어 렉스 스태프 하나, 8명의 일본인이다.


가는 길 어디서나 조심하라며 서로 포옹을 하는데

몇 명이 울음을 터뜨리니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짐을 들어주겠다며 서둘러 나서봤지만,

마치 영원한 이별 같아 뭉클거리는 마음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었다.


평소 같으면 한두 달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언제 크루즈가 정상 운영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아직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 또한 언제 다시 만나

언제 다시 함께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두 텐더 보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캡틴 잉가


떠돌이 생활 같은 뱃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 어떤 순간에서도 누군가와 이별함에 있어

굉장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뭔가 다르다.


아직 4번째 이별일 뿐인데

앞으로 더 많은 이별의 순간이 찾아올 텐데

뭉클거리고 복잡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하루였다.






69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34일 차) - 5월 23일


불가리안 5명, 캐내디언 2명,

재패니즈 2명, 세르비안 1명,


총 10명의 하선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연이은 친한 동료들의 하선이었다.


언제나 밝고 목소리가 큰 재패니스 호스트 카오리.


전 배에서는 매니저로서 같이 일했었는데

이 배에서는 나의 후임으로서 일하게 된

리셉셔니스트 유미코 상.


세상 친절한 나의 기타 선생님 캐내디언 브라이언.


운동도 매일 안 하면서

고기랑 밀가루만 먹고 맥주도 많이 마신다며

잔소리가 너무 많은 불가리언 짐 인스트럭터 죠지.


온화한 성격과는 다르게

마사지하는 손에는 힘이 넘쳐나는 테라피스트 디미.


두 달이 넘게 바다를 표류하다가

드디어 친구들이 귀국할 수 있다니 너무 기쁘면서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연이은 이별에

뭉클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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