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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Aug 08. 2020

132일 해상격리보다 길었던 14일 자가격리

코로나 시대의 해외 입국자 4/4



132일 동안 육지는 밟지도 못하고

297일 만에 돌아온 한국.


언제 다시 바다로 배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집에 가는 기쁨만 생각하며 왔다.


그런 나를 반겨준 것은


자. 가. 격. 리.




물론 알고 준비해왔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렇게 입국 후 내가 14일 격리를 위해 간 곳은

서울특별시 지정 격리시설
호텔 스카이파크 동대문 1호점





특별수송버스에서 내리니
마스크와 보호복으로 무장한 호텔 직원이 나왔다.

체크인은 한 명씩만 이뤄지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직원의 안내를 듣고 있는데
같은 버스에서 내린 아저씨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같이 내렸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편의점 봉지를 들고 걸어오는 것이었다.

호텔 직원이 어디를 다녀오셨냐고
해외 입국자분은 절대 다른 곳에 가시면 안 된다고
하기는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이거 무단이탈 아닌가....?

한 어른으로서의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무책임한 행동에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호텔 직원이 이후 어떻게 처리했을까.

부디 14일 격리 기간 동안에
규칙은 지킵시다 하는 마음으로
담배 피우는 아저씨를 쳐다봤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들어간 호텔,

프론트 데스크 및 모든 직원이
마스크와 보호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체크인은 프론트 데스크 옆에 있는
별도의 데스크에서 진행되었다.

필요한 서류 작성 및 결제는
언택트로 진행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데스크에서가 아닌
방 안에서 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강남구청에서 준비한 해외 입국자 키트를 받았다.

내용물은 다 지금 꼭 필요한
분무형 살균 소독제, 손 살균 보습제,
겨드랑이 전용 체온계, 방역용 마스크,
의료폐기물 전용 쓰레기봉투.

초기에는 인스턴트 제품도 배부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이게 다이다.





30여 시간 만에
드디어 두 팔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다.

비록 14일 동안 갇혀 있어야 할 공간이라도
일단 침대를 보니 반가웠다.





침실 공간에는

화장대 겸용의 긴 데스크가 있고

그 위에 박스 티슈와 쓰레기봉투,
전기 포트와 커피, 녹차, 종이컵이 있었다.

20개의 500ml 생수병이 있었고,

옷장 안에는 금고와 냉장고, 수건과 가운이 있었다.

그리고 작지만 일단 환기는 시킬 수 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욕조도 있었고

세면대나 욕조 모두 묵은 떼나 까끌한 부분 없이
잘 청소되어 있었다.

휴지, 칫솔, 치약, 비누,
바디워시, 바디로션, 샴푸, 컨디셔너

모두 골고루 충분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어메니티 퀄리티는
씻어야 하는데 그것밖에 없으니까 쓰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14일 동안의 끼니.

세끼 모두 직원이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데

기본적으로 아침은 죽 또는 샌드위치,
점심과 저녁은 한식 도시락이다.

원한다면 과일과 샐러드로 바꿀 수 있고
주스와 우유 중 선택할 수 있다.





체크인 후에 받아 온 저녁 도시락이
나의 첫 끼니였다.

기내식도 별로였고
공항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터라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이후 아침 식사는
죽과 샌드위치 격일로 배달되었다.

죽은 본죽,
죽을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매번 메뉴가 바뀌어서 다 맛있게 먹었다.

샌드위치는 안타깝게도 항상 같은 메뉴였다.

양상추와 토마토, 잘게 자른 치킨 살코기, 치즈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인데

가끔 치즈 대신 뭔가 소스가 발라져 있었다.

워낙에 아침은 꼭 먹는 타입이라 먹었지만

솔직히 요리 잘 안 하는 내가 만들어도
더 맛있게 만들겠다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샌드위치가 올 때에는
과일 젤리는 항상 같이 들어있었고
흑당 두유 또는 흰 우유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번씩 과자가 들어있었다.



아침: 죽 / 샌드위치



한식 도시락....

개인적으로 한솥 도시락을 좋아한다.

지금이야 먹을 일이 없긴 하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의 추억 소환 같은 거라고 할까.

그런데 이 도시락은
한솥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고 할까.

메뉴도 다 비슷한 것이

어쩌다가 먹을만하기도 한데

가장 큰 문제는
도시락이 항상 식어있다는 것이다.

국과 밥, 반찬 할 것 없이
다 식어 있다.

심지어는 차가운 적도 많았다.

어쩌다가 온기가 남아있으면
그 온기마저 달아날까
얼른 먹어버리곤 했다.

찬밥신세가 이런 건가....?


업체가 너무 미리 다 만들어 놓아서인지
배달에 시간이 걸려서인지
다 도착한 호텔에서 시간이 걸려서인지

누구의 책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14일 동안 방 한 칸에 갇혀서
같은 도시락만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점심: 한식 도시락


저녁: 한식 도시락


주말에 어쩌다 나온 알밥



無배려 冷도시락만 먹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는 늘어만 갔고
쓰레기통을 열 때마다 쉰 냄새가 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방 안에서 무슨 음식물 쓰레기!?!?

격리자만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조차도 방 밖으로 못 나가니

남은 음식이 쌓이고 쌓여서 냄새가 나는 것이다.

쓰레기를 방 안에서 내보낼 수 있는 날은

14일 중 단 3번뿐이다.





도시락 배달과 함께
회수도 해주면 좋으련만

쓰레기통을 열 때마다 나는 냄새가 너무 싫었고

그 냄새는 남기게 되는 도시락 때문이니

5일이 지나서부터는
점심과 저녁을 과일과 샐러드 메뉴로 바꿨다.

과일이랑 샐러드가 맛이 없을 리는 없고
온기가 없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메뉴 변경은 매일 오후 5시 이전에
프론트로 연락해야 했다.

프론트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변경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왜 한 번에 신청받지 않고
매일 해야 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샐러드와 함께 주스나 우유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어쩌다가 과자가 같이 들어있기도 했다.





無배려 冷도시락보다는 물론 훨씬 낫지만

샐러드 소스가 항상 1000 아일랜드였는데

항상 맛있게 먹는 오뚜기 제품과는 달리
아예 안 뿌리는 게 나을 정도로 별로였다.

딱 한번 들어있던 오리엔탈 드레싱은 맛이 좋아
한 봉지로 점심과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그래도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으니
훨씬 괜찮았다.





배달 음식이 가능했다.

무조건 선불 이어야 하고
호텔 직원이 대신 받아서 올려다 주는 방식이었다.

먹는 거 무진장 좋아하는 내가
無배려 冷도시락과 샐러드만으로 버티다
우울해질 때쯤 두 번 피자를 배달시켰다.


프론트에 요청하면
편의점에서 대신 사다주기도 하는데
수수료(?)가 붙는다고 했다.

나는 음료수를 한번 부탁했었다.





모든 배달은
호텔 직원이 문 앞까지 가져다 놓고 벨을 울리면

격리자가 방 안으로 들고 들어가는
역시 언택트 방식이었다.






쓰레기 회수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면

20리터 통과 의료폐기물 전용 봉투가
방 안에 미리 비치되어 있었다.

주황색 폐기물 전용 봉투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데스크에 비치되어 있는 투명 봉투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제외한 쓰레기를 분리해야 했다.

3번밖에 없는 쓰레기 회수에
그나마도 통 안에 있는 쓰레기만 회수해 간다.

도시락 용기나 페트병 같은 재활용 쓰레기나
통 안에 미처 못 넣은 쓰레기는 방 안에 내버려 두면
체크 아웃 이후에 호텔에서 수거한다.

나는 쓰레기와 같이 있는 것이 싫어
꾸역꾸역 퍼즐처럼 맞춰서
수거일에 최대한의 쓰레기를 내보냈다.







체크인하고 나서는 눈이 떠질 때까지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려는데

정말 맛이 없어서 바로 버렸다.

바다 위의 배에서도 마시던 커피를
한국 땅에서 못 마실 줄이야....

물론 편의점 신부름 부탁을 해도 되고
배달의 민족을 이용해도 되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하는터라
2주 동안 커피 없이 그럭저럭 잘 보냈다.





격리 일주일이 지나
큰 타올 2개를 더 달라고 하기 위해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은 타올은 쓰지 않고
운동 후 샤워나 반신욕을 하다 보니
큰 타올만 계속 써서
남은 일주일은 새 것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직원분이 대뜸
첫날에 타올 드렸는데 벌써 다 썼냐며
매우 싫어하는 눈치였다.

큰 타올 2개와 작은 타올 10개가 있었을 것이고
원래는 그 타올만 써야 한다며
주저리주저리 설명까지 하고
이번에는 주지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싸인한 서류 중에 어디 쓰여 있었나?
안 쓰여 있었잖아?

구두로 설명해줬었나?
안 해줬잖아?

원래 매일 청소하고 어메니티 새로 세팅하고
그런 거 하나도 안 하잖아?

짐작컨데 해야 해서 하는 일만 하지
엑스트라로 격리자한테 서비스하는 일 없잖아?

무료 봉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박당 10만 원 받고 있잖아?


배에 있을 때 격리된 크루 532명을 케어하면서
여러모로 정말 많이 신경 썼고
시간도 정말 많이 할애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고 불평하는 크루들의 케어까지도
맡아야 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직원의 태도가 불쾌했다.

뭐라고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대답만 하고 끊었다.



일본에서 친구들이 올 때면
어디 호텔이 좋냐고 참 많이 묻는다.

앞으로는 여기 친절하고 괜찮더라 하려고 했는데
절대 여기만큼은 가지 말라고 해야겠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난 10월에 승선해서 일하다 보니
할로윈, 크리스마스, 뉴 이어가 지나갔다.

그리고도 일하다 보니
코로나가 찾아왔고

132일의 해상격리 끝에 하선할 수 있었다.


몇 마디로 일기에 끄적거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에

다시는 못 겪을, 겪어서도 안될
이 유니크한 격리생활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고

132일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던
14일의 자가격리를 끝으로
격리생활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한다.

내일이면 312일 만에 드디어 집에 가는 날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다렸던
휴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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