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기 한달 전,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았다. 그것도 두 개의 암이었다. 하나도 무서웠는데 암이 하나 더 있다니. 우리 엄마는 아프고 아픈것을 참다가, 그날도 이라크에 붙일 물건을 포장하다가 병원에 갔다.
29년 전 내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갓난아기인 나는 피토를 했고 엄마는 날 병원에 데리고 갔다. 피토를 하는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젊은 엄마에게 괜찮다고 해주었던 이제는 늙어버린 의사, 내가 부끄러워하는 가난한 우리 동네의 명의가 엄마의 배를 만져보았다. 엄마에게 혹이 있다고 했다. 혹이 크다며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배에 올리더니 이 혹이 느껴지냐고 했다.
의사는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는 두려워했고 의사는 엄마를 외면했다. 의사는 자기 후배가 운영하는 영상의학전문 병원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빠른 시각으로 CT촬영을 예약해주었다. 다음날 엄마는 2시에 CT촬영을 예약했다. 그날 밤에 난 엄마에게 운동을 간다며 성의없는 카톡을 했다. 엄마의 답장이 없었고 우리 엄마가 답장을 안하네라고 생각하며 운동을 끝내고 집에 왔다. 그날도 나만 생각한 평범한 하루였다. 엄마랑 아빠가 가운데방에 있었다. 나보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할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성급하게 왜 답장 안 하냐고 투정을 부렸다. 엄마가 할말이 있다고 했다. 무서웠다. 엄마가 가슴에 혹이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오늘 병원에 갔더니 배에도 무언가 있다고 했다.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엄마는 열심히 치료 잘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배에도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착하게 살은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엄마가 울었다.
나는 그날 밤에 어떤 밤을 보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 곧장 엄마 방으로 갔다는 것은 기억한다. 30년. 일주일에 6일. 휴가를 제외하고 쉬지않고 일하며 남대문 시장으로 출퇴근을 한 우리 엄마. 그날도 졸린 눈을 비비며 가게문을 열었어야 할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껴안았다. 난 울었다.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워 울었다. 아빠가 울지말라고 울었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엄마는 어제 의사가 예약해준 CT촬영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차에 올라탔다.
한달 전 엄마와 아빠는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었다. 아빠가 오늘 병원에서 전화왔다고 했다. 아빠의 갑상선에 무언가 보인다며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기는 빠를 수록 좋다고 했다. 차 뒷자리에 앉아 허무한 감정을 느끼며 엄마와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아빠도 암인가봐.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