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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Apr 14. 2024

파리에서 맞는 두번째 봄, 그 달짝지근함에 대하여

제목을 두고 고민했다. 그리고 제목을 선택했다.

처음엔 "왜 나는 늘 조급함을 느낄까?" 였다. 최근에 느끼는 알 수 없는 조금함, 쉼에 대한 죄책감 등... 이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고 글을 쓸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파리에 성큼 다가온 봄에 대해 생각했다. 날씨가 좋아질수록 늘어지고 놀고만 싶어지는 내 마음과 학교나 체류증에 대한 조급함. 최근에 생겨난 일을 미루는 습관들에 대한 생각의 충돌로 인한 조급함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존감에 대한 책을 읽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결심, 평가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한다.




파리의 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오래된 파리의 건물들 사이로 빛치는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복에 겨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기회를 갖게 된것일까. 이런 나를 응원해주는 가족들을 만나 복에 겨운 삶을 누리는 것일까. 이 아름다운 날씨와 아름다운 사람과의 대화와 산책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저절로 겸손해지는 것이다.





너와 걷는 파리의 거리. 너와 나누는 대화들. 너가 제안하는 커피와 공원에서의 산책.



첫번째 데이트부터 함께했던, 여긴 우리의 공식 레스토랑이야 !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해서, 목표를 향해서 이런 것들은 사람을 현재에 두지 못하도록 하는  같다. 무언가 빨리 해결 되어야한다는 . 무언가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참고 견뎌내야 하는 . 이런 것들이 힘들어서 프랑스로 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것들을 견디며 살기엔 너무 연약해서. 그런 나에게,  조급하고 바빴던 나에게 미루는 습관들이 생겼다.  모르는 누군가 보면 자칫 나쁜 습관처럼 보일  있겠지만, 나는  자신이 이렇게 변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아직도 고민하곤 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현재는 남자친구와 너무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혼자 온전히 보내는 시간들이 중요하다고 느낄때도 있다. 그럴 때 일 수록 이렇게 글 쓰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나는 체류증 문제로 인해 경시청에 다시 연락을 취해야 하고, 화장실의 난방기에선 물이 샜고, 자궁경부암 검사지에 예약 날짜를 정해서 편지도 부쳐야 하고... 해야할 일 투성이 인데 미루고만 있다. 이건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 ! 당장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누가 목에 칼이라도 두른 듯 불편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한다. 게을렀던 적도 없으며, 오래 자본적도 없는 내가 낮잠도, 늦잠에도 취해 있다. 이런 내 변화가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공원에서 눈으로 코로 음미하는 꽃처럼 나의 변화를 잘 바라보고 어루만져 줘야지.


남자친구는 뭐든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사람이다. 옆에서 천천히 보고 있자니 자기가 하고 싶을 땐 누가 귀에 피가 나도록 소리 질러도 눈하나 깜짝 안하다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 될 때는 밤을 새 몇날이고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믿음이 생겼다. 이 남자는 그냥 내버려 둬야 겠구나. 그를 보며 내가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듯 내 자신도 그렇게 바라보기로 했다. 나도 날 이해하고 믿어주기로. 그러니 더 두려워할 일은 없도록.


파리에서 두번 맞는 봄은 이렇게나 다르다. 파리는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작년에는 파리의 가장 꼭대기층에 살며 찌는 햇살과 힘든 인간관계, 알 수 없는 미래등으로 힘들었었지. 지금은 일도 친구도 사랑도 내 리듬으로 잘 해내고 있다. 때로는 아둥바둥 때로는 착착 잘 해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오래도록 프랑스 유학을 오고 싶었는데 몇년을 노력해도 안되더니 시간이 지나 나이를 조금 더 먹고 경험을 조금 더 가지고 내가 이렇게 강해져 내가 이렇게 해내고 있다.



최근에 친구들과 계속 파티하고 술마실 기회가 생겼다. 한 친구가 작년 시험볼 때 이야기를 하면서 너가 시험을 보면서 그것도 프랑스어로 하면서 그런 일들 정말 쉽지 않았을거야라고 내 이름을 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같이 있던 다른 친구들 열명정도가 모두 동의하며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당시엔 웃기고 창피했지만 그래, 나 잘하고 있다. 가끔 이렇게 멈춰서서 나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어디서든, 언제든 잘할거야 ! 너라면 !


새벽에 꿈을 꾸었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평소같으면 하염없이 울었을 연약한 내 모습이 투영된 아릿한 꿈이었다. 나는 가족과 친척들에 둘러싸였있었다.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했으며, 아빠의 등을 보라다보다가 아빠를 꼭 껴안았다. 아빠의 얼굴을 바라볼 순 없었지만 아빠의 슬픔과 그리움을 느낄수 있었다. 나와 아빠를 바라보며 엄마가 눈물을 훔쳤다. 언니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 엄마와 아빠 언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너무나도 사무쳐 그들이 잘 지내는지 알고 싶어졌다. 카톡을 했고 아빠가 한국의 벚꽃풍경을 동영상으로 보내주었다.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한국의 그 텁텁한 봄, 그 아름다운 꽃들, 아빠 차의 뒷자석에 앉는 봄 밤의 텁텁한 공기, 뒷자리에서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작은 실랑이들, 우리 셋을 이어주는 언니의 사랑의 문자들. 나 프랑스 파리의 봄도 좋지만 한국의 봄도 너무 그리워.


최근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다. 글이 너무 좋아 이틀만에 완독하였다. 오랜만에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는 글이었고, 그가 스님이지만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인지 몰랐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실 그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엄격한 스님같았는데 그의 글을 읽노라면 작은 것에 눈물 훔치는 맑은 영혼임에 내 가슴에도 눈물이 맺혔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호통이나 분노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봄은 놀라운 것이다. 봄은 힘이다. 봄은 시작이 아니고 재생이다. 이주 후면 내 생일이다. 나는 봄에 태어났다. 나 올해는 봄을 너무 타는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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