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한국 문화원에선 무료로 한국 책들을 대여 해준다.
예전엔 지하철 타고 15분 가량 걸렸는데 최근에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이사온 후에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주기적으로 책을 빌려온다.
고등학생때까지 문학책을 끼고 살다가 대학생이 된 후로 책을 안읽게 되었다. 파리로 온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책을 다시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것과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 살게 된 이후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라며 엄마가 법륜스님의 유투브 동영상을 추천해주셨고, 그 이후로 불교의 정신에 마음이 갔다. 그러나 법륜스님 말고는 아무도 몰랐고, 그가 말씀해주시는 즉문즉설의 해답이 내가 아는 불교의 전부였다. 도서관에서 법륜스님 관련 책을 빌리다가 그 옆에 법정스님의 책을 보았다. 무소유. 어렸을 때 제목만 들어 봤지, 무슨 내용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호기심에 빌린 책을, 숨이 가빠라 읽어댔다. 그가 스님이기 이전에 작가일까, 작가이기 이전에 스님일까. 그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몰랐다. 마치 내가 그와 함께 수도생활을 해내는 사람처럼, 그의 책 한장한장이 내 마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얼핏 본 사진에서는 엄격해보이는 종교자의 인상만 받았는데, 그의 글속에서 그는 작은 것에도 깊은 가르침을 받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오랫만에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한 인격을 만난 것 같아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몇번 있었다. 그의 책은 단숨에 읽어버렸지만, 함께 빌렸던 그러나 중간에 계속 멈칫멈칫하게 되는 책들까지 다 읽은후에야 반납을 했다. 그리고 그의 책을 다시 찾았다. 오두막 편지.
그가 글 마지막에 내리꽂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내 마음에, 머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 문장만을 음미하고 내가 더 깊이 느꼈으며 하는 바람이 들어 간혹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겪고 있는 마음이랄까, 경험이랄까 그런 것들이 가끔 나 자신을 제한하고 정의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을 때나, 상처받은 마음에 사람들의 말들을 곱씹으며 괴로워할 때,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으로 받아칠 때, 작은 일에 들떠하다 면도날에 베이듯 너무나도 쉽게 가라앉을 때... 이 모든 것들 이전에 나라는 사람, 나라는 한 주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가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느 순간 부터 생각하기 싫을때가 많았다. 생각했던 것처럼 풀린적도 없었고, 생각에 늘 괴로워 했다. 그러나 지금, 파리에서의 나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질문마냥 내 인생의 방향을 조금 잡아야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 나의 작은 우주를 어떻게 조화롭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
프랑스 파리에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길상사라는 절이 한개 있다. 오두막 편지를 읽다가 법정스님이 파리에있는 길상사와 인연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법정스님은 돌아가신지 오래지만 나는 지금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가르침을 얻고 있다. 또한, 나는 프랑스와 무슨 인연이 있어 2018년도에도 한번 살았으며, 2022년 가을 이후로 이곳에 거처를 튼것일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 그것은 보통 재정적인 것이고, 다른 언어와 문화들 때문인 것이고, 내가 길 읽은 채 마구잡이로 살아가고 있음때문인데, 그와 인연이 된 후로 잠시 나의 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려 한다. 나는 파리에서 그렇게 법정스님을 만났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