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효자인 척하는 주말 시골 어머니 집으로

by 수미소


주말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꼭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딱히 할 일은 없다. 약속도 없고, 급한 일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습관처럼 세면대를 향하고, 옷을 입고, 차 키를 챙긴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이 동작은 이제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마치 정해진 루틴처럼,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목적지는 늘 같다. 시골에 혼자 계신 여든다섯의 어머니 집.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자주 내려가야 하냐고. 사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전화로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한 달에 한두 번만 가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나는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길 위에 오른다. 그 행동이 효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죄책감을 덜기 위한 나만의 방식인지 나 스스로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차를 몰고 나서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도시는 여전히 분주하지만, 시골로 갈수록 풍경은 단순해진다. 겨울 들판은 말이 없다. 논은 비어 있고, 나무들은 잎을 모두 내려놓은 채 서 있다. 이 풍경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한때는 많은 것을 품고 살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으며 버티고 있는 모습.

시골집에 도착하면 늘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대문은 반쯤 닫혀 있고, 마당은 조용하다. 차 소리가 나면 잠시 후 안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문을 열고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은 매번 비슷하지만, 나는 매번 다르게 느낀다. 오늘은 조금 더 느려 보이고, 오늘은 조금 더 작아 보인다. 그 변화가 아주 미세해서 더 마음에 걸린다.

“왔냐.”
어머니는 늘 같은 말로 나를 맞이하신다. 반가움도, 걱정도, 기다림도 그 한마디 안에 들어 있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한다. “응.”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안부를 나눈 셈이 된다.

집 안은 깔끔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집을 정리하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신다. 불편한 몸으로도 생활의 질서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미안함을 느낀다. 내가 더 챙기지 못한 것 같아서, 더 자주 오지 못한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효자인 척’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올라가 있고, 물은 끓고 있다. 어머니는 내 외투부터 걱정하신다. “춥지 않냐.”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건 내가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그 역할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점심은 늘 비슷하다. 김치, 국, 몇 가지 반찬. 특별할 것 없는 밥상이지만, 나는 그 밥을 먹을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위해 밥을 준비하시고, 나는 그 밥을 먹으며 효자인 얼굴을 한다. 그 모습이 진심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완전히 진실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식사를 하며 어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 기억이 조금씩 섞인 이야기. 나는 굳이 바로잡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정확함이 아니라, 어머니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들어주고 있다는 감각이 어머니를 지금의 시간에 붙잡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마당을 한 바퀴 돈다. 겨울 마당은 썰렁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집 밖을 챙긴다. 나는 혹시 미끄러운 곳은 없는지, 위험한 것은 없는지 살핀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나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어머니는 가끔 “이제 다 늙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괜찮다는 말도, 아직 멀었다는 말도 모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웃는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어머니의 말수가 조금 늘어난다. 젊었을 적 이야기, 고생했던 날들, 이미 떠나보낸 사람들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는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나는 그 옆에서 현재에 남아 있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기억이 흐르도록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

밤이 되면 어머니는 나에게 자고 가라고 하신다. 나는 다음 날 일정을 핑계로 거절한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다. 사실은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래서 나는 또 효자인 척, 어쩔 수 없는 척을 하며 돌아갈 준비를 한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 계신다. 내가 깨기 전부터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출발할 시간이다. 어머니는 대문 앞까지 나오신다. “조심히 가라.”
그 말은 늘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나에게는 언제나 무겁다.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효자인가. 아니면 효자인 척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외면하지도 않는 상태. 그 애매한 위치에서 나는 매주 시골로 향한다.

85세 어머니 앞에서, 오늘도 나는 효자인 척한다. 하지만 그 ‘척’이라는 말 속에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들어 있다. 완벽한 효도는 못 해도, 주말마다 찾아오는 이 반복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그래서 다음 주말도 나는 다시 같은 길을 달릴 것이다.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겨울이 지나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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