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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날의 처방전"

효자 흉내내는 아들의 작은고백

by 수미소

삶은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닮아가는 것.

병원 가는 날의 처방전


오늘은 또 다른 토요일 전날

오늘은 금요일, 한 달에 한 번씩 어머니의 병원 가는 날이다.

대학병원까지 가는 길이 멀어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새벽 7시 30분, 마당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옷을 차려입고 나와 앉아 계신다.

차가 도착하자마자 “안 늦었나? 차 막힌다, 어서 가자”라며 서두르신다.

진료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시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병원에 도착하면 벌써부터 많은 할머니들이 대기실에 앉아 계신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엄마는 병원 대기실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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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늦은 저녁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몸이 이상하다, 반쪽이 감각이 없다.”

망설일 틈도 없이
엄마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진단은 뇌경색.

조금만 늦었어도…
그날 응급실 침대에 누워
두려움에 굳어 있던 엄마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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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엄마는 그야말로 일꾼이었다.

논농사, 밭농사, 과수원까지.
포도, 배, 복숭아를 남보다 크게 키우며
온몸으로 가족의 생계를 지켜내셨다.

기계 하나 변변치 않던 시절.
엄마의 손은 밭을 가는 도구였고
삶을 지탱하는 기계였다.

그러나 세월은 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인공관절 수술을 견디고,
이제는 약과 검진에 의지하며 살아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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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는 입구부터 내 손을 꼭 잡으신다.

하얗게 센 머리칼,
주름 깊은 얼굴 위에
작은 아이 같은 의지심이 겹쳐진다.

딸이나 며느리의 손은 익숙할지 모르지만
환갑을 넘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병원 문을 들어서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다.

그 손 안에서
오히려 내가 기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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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복잡한 복도를 걸으며
엄마는 나를 보며 늘 같은 말을 묻는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 카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엄마. 연세에 비해 아주 건강하시대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엄마는 다시 밭으로 나가 힘을 쓴다.
통증과 고통은 그대로지만,
의사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새 힘을 얻어내신다.

통증과 고통을 꾹 눌러 삼키고, 마지막 힘까지 다 쓰면서도 의사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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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안다.

나 역시 아침마다 챙겨야 하는 약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세월은 조용히 나의 손에도 약봉지를 더해가고 있다.

언젠가 내 약봉지의 개수가
엄마의 그것과 닮아갈 것이다.


그때쯤이면 내가 아들에게 짐을 지우게 될까 두렵다.
그때쯤이면 나도
엄마처럼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오가게 될까.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나는 조용히 가련다.
너희에게 수고 끼치고 싶지 않다.”

그 소망이 얼마나 절절한지
이제는 조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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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어김없이 단골 짜장면집에 들른다.
엄마에게 외식은 곧 짜장면이다.

자식에게 한턱내는 가장 고급스러운 자리이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대접이다.
“내가 오늘 쏜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주인에게 주문을 넣으시고, 계산할 때도 어김없이 지갑을 내미신다.
그 모습은 수십 년 밭일보다 더 당당하고, 그 어떤 기쁨보다 크다.

엄마에게 외식은 곧 짜장면이다.
다른 집 보다 싸고 맛있는 집이다.

시골은 양 많이 주고 다른 집 보다 가격이 싸면
그 집이 최고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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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또 병원 가는 날이 오면
우리는 또 짜장면집에서 웃을 것이다.

약봉지보다 더 좋은 처방전은
짜장면 한 그릇.

그 처방전이
오래도록 발급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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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더 못해준 것을 미안해하고,
자식은 더 못 해 드린 것을 아쉬워한다.

오늘도 효자인 척 흉내만 내고 돌아왔지만,
그 작은 흉내조차
약봉지를 들고 손을 내미는 그 작은 흉내조차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마지막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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