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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경로당, 또 하나의 세상"

효자 흉내내는 아들의 작은고백

by 수미소

경로당, 또 하나의 세상"


오늘은 또다른 토요일.
아직 해가 뜨기도 전, 어머니는 이미 일어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경로당 가야지. 오늘 반찬은 뭘 가져가야 하나.”

도시 사람들에게 경로당은 낯설고 작은 건물일 뿐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경로당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어머니에게는 하루의 목적이자, 이웃들과 삶을 이어주는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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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은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터지는 곳이다.
장기판 위 말이 오가는 소리,
주전자에서 김이 오르는 소리,
그리고 “오늘은 내가 이겼다” 하며 으쓱하는 목소리.

그 속에서 어머니는 잠시 고단한 삶을 내려놓는다.
허리 굽은 몸도, 잔소리처럼 따라붙는 병도
경로당 문턱을 넘는 순간만큼은 조금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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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은 자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내 손주가 이번에 서울서 뭐 됐다카더라.”
“어제 며느리가 햄버그라는 걸 해줬다 아이가.”

사소한 이야기라도 경로당에선 모두 귀 기울여준다.
그 자랑은 질투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더 웃게 만든다.
그 순간만큼은 각자의 쓸쓸한 집보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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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경로당은 어머니의 ‘자존심’이 살아 있는 자리다.
혼자가 아니라, 여전히 사회의 일원이라는 증거.
집에서는 나이 든 몸이 답답하게만 느껴질지 몰라도,
경로당에서는 누군가의 벗이고,
같이 밥을 먹고 웃는 이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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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생각한다.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카페가 그렇듯,
시골의 어머니에게는 경로당이 그런 곳이 아닐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
나이 들어도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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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효자인 척 흉내만 내고 돌아왔지만,
그 흉내조차 어머니의 경로당 발걸음을 지켜주는
조용한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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