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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사진은 버려도 그리움은 남는다"

효자 흉내내는 아들의 작은고백

by 수미소

삶은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닮아가는 것


"사진은 버려도 그리움은 남는다"

사라진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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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다른 토요일,
낡은 앨범 속 아버지 사진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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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새벽, 봉다리 하나를 들고 길을 나섰다.
아내가 챙겨준 건 계란말이와 감자샐러드였다.

누가 봐도 반찬가게 계란말이,
아니면 이렇게 모양이 정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참 잘 만들었다” 하시며
맛있게 드신다.

감자샐러드는 유난히 맛있다며
“이거 어케 만드노? 나도 좀 가르쳐 주라” 하신다.
사실은 내가 아내에게 알려준 레시피였지만,
그렇게 맛있게 드셔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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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늘 바쁘다.
“세상에서 제일 바쁘다” 하시며
텃밭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신다.
나는 그 노동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
주말마다 서둘러 내려오지만,
둘만의 그 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쯤 해두면 한 주는 쉴 만하겠지” 싶다가도
어머니는 또 보물찾기 하듯 일을 찾아내신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주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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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드시고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가
문득 말씀하셨다.

아버지 사진이 왜 이리 없노?”

앨범을 아무리 뒤져봐도,
남아 있는 건 자식들 결혼식장 속 아버지 얼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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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앨범 속 사진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던 날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어머니는 사진을 조용히 쓰레기통에 넣으셨다.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마지막까지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노?.”

짧은 한마디가 이유였다.
사진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는 오히려 더 선명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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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또 다른 기억의 방식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버리고 지워도 결국은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었다.

사진은 앨범 속에서는 사라질 수 있어도,
마음속에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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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며 어머니의 몸은 서서히 병들고 지쳐갔다.
거울 앞에 앉아 한숨을 내쉬는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이제 곧 버려져야 할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품고 계신 듯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다시금 사진첩을 펼치셨다.
오래전에 버린 줄 알았던 아버지의 사진을 찾아내려는 듯,
손끝에 아쉬움이 묻어있다.

버림과 지움 속에서도 결국은 다시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어머니에게 남겨진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이란 결국 남겨두든 버리든
마음속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아쉬운 손길은
단순히 종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 세월의 증거를 다시 붙잡으려는 아쉬움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자,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한 마지막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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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주말도, 또 다른 주말도
앨범 속 드문드문 비어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어머니의 사진으로 채워가려 한다.

앨범 속에 더는 빈자리가 생기지 않도록,
또 다른 어머니의 앨범 한 권을 완성해 드리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나의 앨범을 떠올린다.
내 앨범은 어디에 있을까?
얼마나 비어 있을까?

내 앨범 속 사진들은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그 사진 하나하나가 내 인생의 행복한 순간이고
나의 전부이듯,

어머니의 앨범에는 아버지의 사진들이 비어 있지만
그 자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들의 사진으로 하나씩 채워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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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았다.
삶은 억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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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효자인 척 흉내만 내고 돌아왔지만,
그 흉내조차 어머니의 그리움을 덜어내는
조용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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