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35세 무직. 그리고 일에 대한 마음
회사 생활 3년 차. 회의 때 팀장님께 편하게 농담을 건넬 수도 있고 월급을 받아도 어느 정도 1인분의 밥값을 하고 있구나 느낄 무렵이었다.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출근을 해 일을 하고 있을 때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고 있던 대학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야, 너 우리 회사 이직 관심 있냐?"
"이직이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것저것 물어보니 마침 온라인 플랫폼에 적합한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담당자가 필요했고 내가 생각이 나 연락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는 규모는 작았지만 눈에 보이는 성장을 하고 있는 데다가 스스로도 한창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무렵인지라 선뜻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 취업시장에서 내가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추고 있을지 궁금했기에 한번 지원이나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선배가 내게 먼저 물어보기는 했지만 취업에 있어 유리한 점이 있지는 않았고 그런 자리가 있다고 일러주는 정도였다. 오랜만에 채용사이트를 찾아가 공고를 확인하고 이력서를 다듬은 후 제출했다. 역시 대기업임을 실감케 하는 적성검사와 여러 차례의 면접이 진행되었다. 무척 감사하게도 쌓아온 직무경험이 적합했는지 결국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복지정책 안내메일을 받고 입사일 조정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이직을 포기했다. 조금 어이없는 이유지만 기존의 조직에서 좀 더 '굴러보고 싶다.'는 호기로운 판단이었다. 기존의 회사에 입사할 당시 5명의 소규모 조직이 20명 남짓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동시에 나는 많은 부분에서 인정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직을 하면 연봉은 오르고 복지도 워라벨도 훨씬 좋았겠지만 좀 더 회사의 성장과 함께 나의 역량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래, 내가 거기도 포기하고 여기서 일하는데. 좀 더 재밌게 좀 더 멋진 성과를 만들어보자!"라며 스스로 마음의 사기를 북돋우는 사건이 되기도 했다.
이후 계속해서 기존에 다니던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팀원을 채용하는 과정 중 몇 번의 면접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면접자들의 자료를 보고 면접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히 내가 이직을 준비할 때의 상황들이 겹쳐 보였다. 그제야 이력서의 내용들을 조금 멀리 바라볼 수 있어졌다. 좋은 학력도 자격증도 대외적인 활동도 모두 중요하지만 또 어느 경우에는 그 당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상황, 역량, 경험들에 맞는 사람을 찾고 있기에 타이밍적인 요소 또한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연인이 되는 과정처럼 말이다. 그러자 앞으로 취업의 어려움 속 절반은 회사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다. 때로는 내가 가진 역량이 충분함에도 회사의 상황이나 요구사항과 맞지 않아 불합격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회사의 요구사항에 딱 맞는 순간에는 나의 부족함이 보완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력서에 모든 것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까지는 없다. 어떤 빈칸은 어쩌면 회사와 나를 연결해 줄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니까.
결국 그 회사가 나를 선택한 이유는 나의 역량을 인정하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 회사가 서로 맞는지를 솔직하고 면밀하게 가누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과정 가운데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나의 전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과정 속에서 배움을 찾고,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용기를 가지기를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