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35세 무직. 그리고 일에 대한 마음
스물여덟, 취업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몇몇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근근이 벌어먹고 살았지만 더 이상은 무리겠다 싶었다. 내 미래의 몇 안 되는 바람 가운데에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 즉,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실천방안이 도출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내 사고능력으로는 직장생활 외에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만드는 방법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다 보니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비슷한 직군과 규모의 회사다 보니 되려 선택이 쉽지 않았다. 표를 만들어 상/중/하로 점수를 매겨가며 저울질을 했다.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월급, 출퇴근 거리, 회사의 주 사업모델 등이 비교항목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항목과 정보력으로 저울질을 열심히 했다. 사회초년생이 연봉에 대한 정보나 사업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란 꽤 난이도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기에 나름의 애씀으로 입사할 회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생활이니 뭔가 대단했어야 할 것 같았지만 남들만큼 애썼고 남들보다 퍽 마음이 어려웠다. 그렇게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다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엄마, 나 취준 할 때 다른 회사도 붙었잖아. 그때 거기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왜?"
"그냥 그랬으면 어땠을까 해서. 그래도 거기는 나름 큰 회사이기도 했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 같은데? 네가 무엇을 선택해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비단 모르는 원리가 아닌 당연한 말이었음에도 한 대 얻어맞은 듯 아차 했다. 동시에 마음 한켠에 포근한 위로가 남았다. 어머니의 그 말이 한 동안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동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끌어안아야 하는 일임을 자꾸 망각한다. 나의 선택으로 내가 서있는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여정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하는 일임을 이제는 어느 만큼 알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내 선택을 스스로 너무 초라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과거에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지금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