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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Aug 13. 2024

예술 말고 일을 하자고

 입사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던 햇병아리 시절, 회사의 콘텐츠 홍보에 필요한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전공은 교육분야고 영상은 취미 수준으로 만들어 보았음에도 작은 컨설팅 회사에서는 무엇이든 역량을 활용해 모든 과제를 수행해 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참고할만한 영상 레퍼런스도 없고 정확한 방향성 없이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라는 말에 당황할 틈도 없이 바로 영상제작에 돌입했다. 내게 주어진 리소스는 회사에서 직접 번역하여 출간한 책과 파워포인트 파일 안에 있는 캐릭터 디자인이 전부였다. 먼저 책을 여러 번 읽고 내용을 추린 후 스크립트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상길이가 점차 짧아지고 있던 시기라 최대한 간추리려 애썼지만 심리학 이론 서적이었기에 내용이 많아 쉽지 않았다. 여차저차 내용을 간추려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다음으로 영상화를 위한 디자인 리소스를 수집해야 했다. 기존에 만들어봤던 영상은 직접 촬영한 비디오 또는 오픈소스의 영상과 사진을 활용한 컷편집과 자막 그리고 간단한 효과를 활용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스타일의 영상이 아닌 일러스트를 활용한 우리 회사만의 영상을 만들어 보자던 누군가의 멋진 아이디어로 갑자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되었다. 돈을 주고 구매했으니 저작권 걱정 없이 마음껏 써도 된다던 파워포인트 파일을 열어보니 다양한 장면이 연출된 캐릭터들과 사물이 수십 장에 걸쳐 펼쳐졌다.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던 그림의 그룹설정을 해제하자 모든 관절과 눈코입이 작은 단위로 층층이 쪼개졌고 그 수만큼 속으로 절규했다.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몸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팔과 몸통, 눈과 입 등을 따로 잘라내어(?) 파일로 저장하고 영상편집 프로그램에 올려 하나하나 동작을 만들었다. 엉성하고 오래 걸렸지만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창조의 즐거움이 또 새로운 성취감을 줬다. 또 스크립트에 직접 내레이션을 추가해 목소리를 입히고 적당한 배경음악도 찾아 넣었다. 그렇게 며칠의 야근이 이어진 끝에 첫 영상제작을 완료했다. 


 대망의 시사일. 회의실에 둘러앉은 대표님과 팀장님 그리고 몇몇 팀원이 모였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회의실 불을 끄고 영상을 재생했다. 영겁 같은 4분여의 시간이 흐르고 불을 켜자 몇몇은 책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팀장님께서 정적을 깨고 말씀하셨다. "며칠 동안 만드시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러자 형식적인 박수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시길 "자 그러면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이야기 나눠볼까요?" 그 이후로 이어진 피드백시간, 쏟아져내린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감출 수 없던 것은 여전히 기억난다. 부끄럽고 속상한 마음을 접어두고 열심히 노트에 피드백 내용을 받아 적다 보니 어느덧 미팅시간이 마무리되었다. 한두 명씩 사람이 빠지고 팀장님과 사수가 남자 팀장님께서는 앞으로는 사수를 통해 중간점검을 받으며 일을 진행해 보라 말씀해 주셨다. 바로 이어 사수가 오늘 피드백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어떤 것들부터 해야 할지 업무를 갈무리하는 미팅을 바로 이어갔다. 사수의 정리는 이러했다. 먼저 빠르게 자주 피드백을 받을 것. 특히나 신입사원일수록 회사의 기조를 맞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작은 부분과 방향성을 자주 점검받아서 딴 길로 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입사원에게 별달리 기대하지 않는다는 공공연한 진실을 그때야 알았다. 다음으로는 앞선 내용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완벽주의를 담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감기한에 맞춰 적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술 말고 일을 하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밀한 수고도 중요하지만 회사라는 구조 아래 협업 시스템에는 마감기한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나는 예술을 하고 있었다. 아니 자빠졌었다. 아무리 수려한 단어와 표현이 모여도 결국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문장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일도 마감을 짓지 못하면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철없는 예술가의 마음으로 일하던 그때의 내게는 뼈아픈 피드백들이고 경험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일의 기본적인 원리와 조직에 방식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던 값진 시간이었던 것이다. 원래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는 법. 아프기 싫지만 쑥스럽고 아파야 배우고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아, 앞으로도 얼마나 더 부끄럽고 아파야 할까? 조금은 두렵고 그보다 더 조금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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