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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Jul 25. 2024

먹고살자고 하는 일(2)

답답할 노릇이었다. 눈을 흘겨 다른 사람을 지켜보면 다들 별문제 없이 무던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사사건건 불편해 매사에 마땅한 이유가 필요한 건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꼬여가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자니 불편함은 커져만 갔다. 동료의 작은 호의, 업무의 성공적 수행,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 보람되다가도 이내 작은 불평과 불안 그리고 회의감이 빈번히 밀려왔다. 불편함이 알알이 쌓여 한두 해가 훌쩍 지났다. 어느 날 갑자기 원래 출장 대상자였던 분이 이직하게 되며 갑작스럽게 해외 출장이 잡혔다. 사실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윗분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해야 하는 출장이라 달갑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으레 내 연차 정도에는 한 번씩 다녀오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라 등 떠밀리듯 출장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번아웃의 시작이 되어버린 출장이 되었다. 내 마음의 상태가 건강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참 아쉽다. 가는 데만 경유를 포함해 20시간이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도,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었던 수많은 논문 발표와 브리핑도, 연이은 연착과 취소에 수백만 원을 날린 숙박과 비행기편도 의미 있던 경험으로 애써 포장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힘겹게 한국에 돌아와 업무에 복귀해 꾸역꾸역 일을 하자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마음을 어디서부터 해소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상황의 어려움을 해소하던 방식이 주로 독서였기에 주말 시간을 내어 큰 서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뚜렷한 목적 없이 매대를 훑던 내 눈길을 잡아끄는 책이 있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크리스텔 프티콜랭)라는 책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데다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서 이 책의 제목은 내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었기에 큰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내용이 완전히 새롭거나 혁신적인 내용은 아니었음에도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책은 신경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전체 비율의 1/5 정도 존재할 수 있으며 왜 이들이 생각이 많은지, 보통 사람들과의 차이점, 그리고 똑똑한 머리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지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내게 큰 위로가 된 부분은 내가 사회 부적응적인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어떤 분류로 총칭될 수 있다는 점과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잘 살아가자는 저자의 따뜻한 의도였다. 이후에도 비슷한 부류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었고 ‘그냥’이 쉽사리 되지 않는 사람이 여럿이라는 것에 또 한 번 안심했다.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게 조금 쉬워졌고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내 유난스러운 신중함은 관계와 상황에 깊이를 더하는 진정성이 되었고, 쓸데없이 많이 보이고 들린다 여기던 예민한 감각은 차별성 있는 시선과 배려 깊은 섬세함이 되었다. 


이런 내게 일이 그저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일에 대한 방향성을 찾기 위해 또다시 애쓰는 과정 가운데 내 목소리 같은 말을 발견했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신학자인 도로시 L 세이어즈의 말을 인용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어야 한다. 일이란 일하는 사람이 가진 능력의 완전한 표현, 그 안에서 영적, 정신적, 신체적 만족을 발견하는 것이여야 한다.” 그렇다. 내게 일은 먹고사는 것 이상의 큰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 일을 통해 내가 삶의 전방위적 만족을 발견할 수 있기를 깊이 바란다. 피곤한 삶이지만 어쩌랴, 이게 지금의 나 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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