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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Aug 01. 2024

커피를 마셨으니 차력쇼를 시작합니다(2)

 뒤늦게 만난 커피의 세계는 정말 거대했다. 원두부터 추출방식, 무엇을 가미하는가에 따라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 세계를 경험하니 더 이상 맛없던 검은 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접속시켜 주는 특별한 음료가 되었다. 출근길 인파가 부대끼는 게 싫어 8시에 회사에 출근하고는 했는데, 그보다 일찍 문을 여는 채광이 좋은 카페에서 시그니처 커피를 주문해서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내 루틴이 되었다. 업무가 과중한 어떤 날에는 오후에 한잔 더 커피를 마시며 회사 앞 양재천을 산책했다. 내 취향의 커피와 공간이 생기는 아지트로서 카페에 가는 즐거움도 생겼다. 회사생활에 어리숙하고 힘겨워하던 초라한 직장인에게 커피와 카페는 그야말로 오아시스가 되어주었다. 왜 진작 마시지 않았을까, 왜 주변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커피를 권하지 않았을까 괜히 심술이 나기까지 했다. 


 그렇게 커피가 내 일상에 자연스러워지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평일 업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늦잠으로 오전을 가득 채우려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편감에 잠에서 깼다. 전체적으로 몸이 개운하지 않았지만 특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금 더 자면 나아질까 몸을 억지로 뉘어 쪽잠을 더해봐도 쉽게 개운해지지 않았다. 한두 번은 몸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몇 주가 계속되도록 토요일마다 증상이 반복되었다. 일할 때는 컨디션이 그럭저럭 괜찮다가 왜 쉬는 날에만 이렇게 아픈 건지 억하심정까지 생겼다. 회사의 노예로서 체질이 최적화되어버린 것일지 당황하며 원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지다 특별한 키워드가 눈에 밟혔다. 바로 '카페인 두통'이다. (당시의 뉴스기사를 찾지 못해 최근의 기사로 대체한다.)


“카페인은 혈관 수축작용을 하는데 이때 두통 완화효과가 나타난다”며 “평소 즐겨 먹던 커피를 주말에 먹지 않으면 혈관이 이완·확장되면서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주말마다 두통에 시달린다면 '카페인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장인선, "주말마다 지끈지끈…‘카페인 두통’ 때문일 수도" 헬스경향, 2022.03.19


 기사 내용의 원인과 결과가 내 증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성향상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면 바로 대응전략을 세우는 편이었지만 커피가 원인이라니 당황스러움이 더해졌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오전 업무를 할 때 머릿속에 실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말 내내 지끈거리는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사실 자다가 자주 깨는 것과 같이 수면의 질도 나빠지는 등의 부작용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커피가 주는 각성효과와 업무 시간을 끊어주는 좋은 핑계에 모른 척 외면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커피의 각성효과를 느낄 때마다 내일 그리고 또 모레의 정신력을 끌어다가 사용하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았고 커피를 계속해서 마셔도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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