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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Jul 24. 2017

Where is the sun?

 비가 와도 일희일비하지 않기


1년 전, 더블린행을 결정한 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솔직히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원스>와 <싱 스트리트>를 통해 약간의 풍경을 엿보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그것은 논픽션이 아닌 영화였고, 더블린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이 더 와 닿았았기에, 여전히 내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의 낯선 나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막상 찾아보니 아일랜드에 관한 특별한 여행 책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한 언니가 툭 던졌던 "어딜 가든 도착한 순간부터 가족을 위해 삼시 세 끼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입을 옷을 챙겨주고 잠자리를 걱정하는 우리네 일상은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처럼 나는 더블린에서 뭘 입고 뭘 먹고 어디서 자야 할지, 당장의 일상을 제일 먼저 고민해야 했다.


3개월 미리 더블린에 머물고 있던 남편과 1년 정도 더블린에 거주한 지인을 통해 입수한 한결같은 정보는

"어찌 됐든 비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왜냐, 더블린에는 사시사철,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느 곳이든 비가 내릴 수 있으니까.

준비 일 순위는 방수가 되는 재킷. 그리고 비와 함께 몰아치는 바람을 막아줄 모자 달린 바람막이 재킷. 하지만 비옷이나 장화나 우산은 그다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 그럴까, 칙칙한 재킷 몇 벌과 내복 등을 위주로 짐을 싸면서도 나는 그 점이 의아했다. 그러나 더블린에서 지낸 지 몇 달이 지나 그 궁금증이 조금씩 풀려갔다.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곳

흔히 우리나라의 기후를 설명할 때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아일랜드는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잠시 머무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면 언어가 달라도 똑같은 얘기를 한다. 물론 이곳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존재한다. 하지만 굳이 1년을 살지 않아도 하루 동안 그 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아침엔 조금 쌀쌀하고 춥다가도 한낮이 되면 선글라스가 필수품이 될 정도로 이글이글 해가 뜨겁다. 그렇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슬쩍 내비친 해를 발견하고 "오늘 날씨 정말 좋지?" 하면서 촐싹맞게 좋아하다가는 갑자기 우르르 몰려오는 먹구름에 낭패를 당하기 일수다. 거기에 비바람까지 후려치면 문득 나는 어쩌다 여기서 <해님과 바람>의 주인공이 되었지? 하는 생각에 서러워지기까지 한다. 그러다 저녁이면 힘겨웠던 몸과 마음을 달래주듯 오렌지빛 노을이 스르르 어깨를 감싸안아 준다. 어쩌면 세상에서 구름이 가장 빨리 흐르는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루가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이곳.




Where is the sun?

더블린 사람들은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할 때가 많다. 나는 한국에서도 내가 그렇게 날씨 얘기를 자주 했었나 이따금씩 떠올려보곤 했다. 날씨가 좋다, 비가 온다, 등의 일상적은 대화는 아주 가끔 나눴던 것도 같지만 이곳 사람들처럼 진심으로 하늘을 찬양하거나 원망한 적은 장마 때 말고는 드물었던 것 같다. 아침부터 하루 내내 하늘이 파랗게 높고 해가 쨍한 날씨가 계속될 때면 대부분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Beautiful! Wonderful! Lovely!"를 외치며 난리가 난다. 가끔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신이 나서 날씨 좋지 않냐고 말을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상투적인 인사가 아니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찬사이자 기쁨의 표현이라는 것을 숱한 비를 맞은 후에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나 역시도 환한 날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들떠서 무슨 말이라도 떠들고 싶어 지기 시작했으니까.

아침부터 귀신이라도 나올 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인사의 양상이 달라진다. 비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조깅복을 입고 달리며 명랑하게 "Good morning!"을 외치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개의 목줄에 이끌리듯 끌려가며  "Where is the sun?"하고 묻는 이도 있다. 낯 모르는 중년 아저씨의 그 푸념 섞인 하소연이 왜 그리 정겹던지, 나는 요즘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그 말을 장난처럼 던지곤 한다.




'일비일비'해도 '일희일비'하지 않기

'보슬보슬'이 아니라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나는 신호등 앞에 서서 바삐 걸어가는 더블린 사람들을 세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걷는 사람은 열명 중 다섯 정도. 그 다섯 중 모자를 쓰지 않고 그저 비를 맞는 사람이 두셋. 겨울인데도 반바지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더블린에 머무는 1년 동안 세 개의 우산을 잃어버리고 두 개의 우산을 부러뜨린 나는 1년의 절반을 똑같은 방수재킷을 입고 다녔던 것 같다. 비가 온다고 우산을 들고나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비치다 보니 들고 간 우산을 머릿속의 지우개로 쓱싹 지울 때가 많았고, 비바람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때면, 아무리 튼튼한 장우산도 속수무책으로 휘어버리곤 했다. 뼛속 시린 경험을 하고 나서야 왜 우산이 그다지 필요 없고, 얄팍한 비옷이 쓸데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 진흙밭을 누비는 우리 가족의 신발은 석 달이 멀다 하고 닳아갔고 어느새 아이들은 비가 내리면 그저 쓰윽 모자를 눌러쓰고 묵묵히 걷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하여, 해가 귀한 만큼 또 자주 내리는 비에 정이 들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이라고나 할까. 비가 온다고 나막신 장수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가 쨍하다고 우산 장수처럼 슬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구름은 흐르고 날씨는 '때에 따라 곳곳'이 다르게 변하니 그저 내 마음은 요동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무지개가 뜰 때면 마냥 반가워하며 핸드폰을 꺼내 찰칵 한번 해주고, 환한 해가 금니처럼 씨익 웃음을 드러내는 아침이면 재빨리 빨래를 돌려 마당에 널어주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날씨 어플을 열어본다. 일주일 날씨 속에 간간히 자리 잡은 해()의 얼굴을 보며 "너 거기 있구나" 안도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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