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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Jul 20. 2017

낯선 곳에서 그저 시작

하늘 반 구름 반



이제야 ‘더블린’에 대해, 아일랜드에 대해 뭔가 얘기를 꺼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건, 흔히들 하는 ‘사람은 사계절은 함께 지내봐야 조금은 알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래도 1년은 넘게 더블린에 발을 붙이고 함께 비바람 맞으며 지냈으니 조금은 ‘너’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고, 더 알고 싶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격은 있지 않을까.

나의 작은 뒤뜰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매일 그 속도가 미묘하게 달랐고, 새소리는 언제 들어도 처음 듣는 신곡처럼 설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서로 몸을 부비는 나뭇잎들의 소리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게 됐는지, 달마다 철마다 다르게 피는 꽃들의 얼굴을 이제는 조금 알아볼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낼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이곳에 정착하면서 나는 내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인정하게 되었다. 분명 나는 여행을 좋아했던,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시절 무리하게 동아리 활동을 세 개나 하면서도 여행 동아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혼 전 후 남편과 시간과 돈을 쪼개며 국내외로 돌아다니는 것에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결혼 후 3년이 되어갈 무렵, 우리는 없는 살림을 다 정리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오자고 호기롭게 다짐까지 했던 터였다. 때마침 다행히도(?) 첫 아이가 생기고, 이후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겹치면서 세계여행의 ‘세’자도 꺼낼 형편이 안 되었던 우리가 결혼 13년이 지난 지금은 아일랜드에 머물러 있다. 사면이 온통 바다인 외딴섬이면서도, 웬만한 유럽의 도시를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보며 멍 때릴 수 있는 나의 뒤뜰을 가장 사랑하는 집순이가 되어가고 있다.


실상 나는 여행을 즐기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 내비게이션도 돕기 버거운 타고난 길치이며, 어느 길이나 건물 안에서든 방향을 두 번만 틀고 나면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잊어버리는 지독한 방향치이다. 학창 시절, 새 학년마다 반이 바뀌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고, 새 신발, 새 옷에 몸과 마음을 주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그런 진부한 사람이다. 여행은 그저 좋아하는 음악, 책, 영화, 그림과 같은 좁고 편협한 나만의 취미에 구색 맞추듯 하나 더 보태고 싶은 그럴듯한 아이템이었다고나 할까. 역시 진부한 얘기지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실 속 맨 얼굴과의 간극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과도 같다.


   



그렇다. 나는 정착을 원했다. 다만 때로는 그럴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고, 살면서 그렇게 절실하게 머물고 싶은 곳이 아직 없었으며, 여기보다 어디 더 나은 곳이 있을까 싶어 부대끼는 마음을 가끔의 여행으로 달래는 것이 그나마 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블린에 1년 넘게 머물면서 깨달았다. 어느 고서(古書)에서 그랬던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고 네 마음이라고. 어쩌면 나는 평생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줄, 매료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더블린에 처음 와서 했던 일은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5층 이상의 고층 건물을 보기 힘든 이곳의 하늘은 거의 초록빛 잔디나 완만한 산과 맞닿아 있다. 굳이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하늘이 진기하고 그 사이를 누비는 구름들이 또 신기해서 내 눈은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의 빛깔과 목적지라도 있는 듯 쉼 없이 걸어가는 구름을 좇아가기 바빴다.

처음에는 천천히 흐르는 구름에 맞춰 시간도 속도를 늦춘 것만 같아서 도낏자루가 썩는지도 모르는 신선처럼 가만히 앉아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다. 그런 날은 정말 사각사각 쓱쓱-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러나 현실에 익숙해질수록 시간은 다시 제 걸음걸이를 찾기 시작했고, 덩달아 빨라지는 구름 따라 내 마음도 초조해졌다.

초조함이 극에 달아 마당 한 켠에 단단히 묶어놓은 빨랫줄처럼 어딘가에 저 구름을 묶어두고 싶어 질 때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곳 아일랜드 더블린에 정이 들고 있구나.

모국도 아니고 앞으로 평생 살 곳도 아니고, 그저 집시처럼 머물다 언젠가 다시 떠나야 할 이곳에 마음 한 구석을 내주고 말았구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구름처럼, 때로는 허무하게 그저 가고만 있다고 느껴지는 내 삶처럼, 결코 잡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결국 좋아하게 되었구나


비록 이곳에서의 내 시간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의 지인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관심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끄적이고 싶어 졌다.


뜬구름 잡듯 허망할 이야기일지라도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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