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Dec 02. 2019

달님과 사춘기 소년

2년 전의 일기

서울에서는 집에서 학교까지 3분이면 충분했는데 더블린에서는 걷는 시간 25분, 트램 타고 15분 정도니까, 대략 40분은 필요하다. 그래서 등하교 때마다 아이들과 나눌 다양한 레퍼토리의 얘깃거리를 생각해내야 한다.

너무 늦었거나 짜증 많은 월요일 같은 날은 퉁퉁 부어서 걸음을 재촉하기 바쁘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끝말잇기, 스무고개, 구구단 맞추기, 영어단어 잇기, 동시 짓기 등등 다채로운 게임을 이어가기도 한다.

아침부터 짜증이 많은 섬이 덕에 오늘의 대화 주제는 사춘기였다.
"엄마, 열 살, 열한 살 넘으면 사춘기가 온다는데 오빠는 언제 사춘기야?"
멀찌감치 뒤에서 갈지(之) 자로 걸어오는 섬이를 힐끔 보며 동생 콩이가 내게 물었다.


"이미 온 것 같아... 아직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엄마, 그러니까 사춘기지. 자기도 모르니까!"
명쾌한 콩이의 답변에 갑자기 기분이 다시 맑아진 나는 딸내미한테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는 실컷 위안을 받으리라 다짐했다!


"엄마 저기 달님!"
하얗고 뽀얀 낮달의 뒤태를 발견한 우리는
"달님이 숨바꼭질하는데 엉덩이를 미처 못 숨겼네!" 하며 까르르 웃어댔다.
뒤따라 오던 사춘기 소년도 어느새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