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겹의 누구들
‘누구’
: 여러 겹의 누구들
나는 ‘무엇’일까?
나는 사람이다.
이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물학적으로 나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도 너도 모두 사람이다.
사람이라 불리는 모두는
사람이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사람이다.
시간과 공간
그 벽을 넘어
모두 사람이다.
그 모두에게 공통된 술어다.
그러나
나는 사람으로 살진 않는다.
나는 술어라는 개념으로 살진 않는다.
나는 주어로 산다.
주어로 나는 고유하다.
오직 하나뿐이다.
‘유대칠’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이가 있어도
둘 다
사람이란 공통 술어로 서술되며
‘유대칠’이란 같은 이름으로 서술된다 해도
같은 이름을 가진 그들은 서로 다른 누구다.
친구 누구에게 유대칠은 누구와도 같지 않은 누구다.
또 다른 친구 누구에게도 유대칠은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누구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있으며
그 더불어 있는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누구의 겹이 쌓이고 쌓여
‘유대칠’이 된다.
그 누구의 겹은
아무리 같은 이름을 가진 이라도
서로 다른 누구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은 그냥 같은 이름의 술어로 서술될 뿐
서로 다르다.
사람이나 동물이란 이름이 그렇듯이.
나는 서로 다른 수많은 이들과 더불어 만나 하나하나 이룬 누구의 겹이다.
만남,
그렇게 생각하면
만남은 내 겹을 하나 더 쌓는 순간이다.
내가 또 다른 나로
나아가는 창조의 순간이다.
만난 그에게 내가 새로운 누구가 되어 쌓이는 순간이니 말이다.
그러니 만남은 참 귀하다.
내가 창조되는 순간이라서.
2023년 6월 6일
유대칠
서재에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