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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n 23. 2023

'토마스 복음(도마 복음)' 읽어가기 2

깨우침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감이다.

2. 깨우침은 나를 흔들고 놀라게 하고, 지배받지 않게 하며, 쉬게 할 것이다.     


2.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알려는 이들은 깨우칠 때까지 멈추지 말라깨우치면 불안해질 것이지만불안해질 때놀라게 될 것이고 모든 것 위에 다스리게 될 것이다그리고 다스린 후쉬게 될 것이다.”     


나는 도대체 왜 이리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가? 도대체 왜 이리도 힘든다. 가장 성스러운 존재가 창조하였다는 데 나는 왜 이미 미움의 마음이 쉬지 않고 일어나고 분한 마음은 나를 사로잡으며, 악과 싸우기 위해 악이 되어 가는가? 정말 여기 지금 이 모습은 내가 있어야 할 바로 그 모습인가? 이게 정말 제대로 된 나인가?      


몰라서 그렇다.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다. 그렇다고 나의 탓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곳에서 나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무언의 교육을 받으며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굳이 말하면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 홀로 당연함을 의심하며 살아가는 건 힘겨운 삶을 선택하는 것이니 말이다. 편한 삶이 당연히 좋으니 더 편하기 위해 묻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묻기 시작했을 때, 알려고 시작했을 때, 조금씩 마주하는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지 않은 나였다. 철학자 예수는 나에게 쉬지 않고 의문하고 묻고 따지라고 한다. 따지고 또 따지라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참된 자리는 어디인지 묻고 또 묻고 또 물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스승에게 구할 곳이 아니라, 스스로 구하라 한다. 철학자 예수는 답을 주는 이가 아니고, 질문으로 깨우치려는 이를 더 힘들게 고민하게 하고 더 애써 구도자의 삶을 살게 하는 자다.      


하나씩 알아가면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당연하다 생각한 것들이 하나씩 허망한 거짓이란 사실에 무너진다. 이것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그 노력의 대가로 편안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그렇게 망각(忘却)의 무지 속에 살았단 말인가? 망각의 사실조차 몰랐으니 망각에서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함은 당연했다. 하나씩 알아갈수록 망각의 어둠을 가르고 참된 나의 자리, 내가 있어야 할 그곳의 빛이 드러날 때, 나는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빛이 나를 채우면 채울수록 나는 과거 나를 지배하던 소유욕과 권력욕 등의 허망함에 이 모두를 버리고 그 모두의 위에, 그 모두의 밖에 나가 무엇의 지배도 받지 않는 쉼을 누리게 된다.      


해탈의 삶 이후, 열반의 자리에서 모든 것은 그저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를 흔들지도 않고 나를 잡아당기지도 않는다. 신비가 몇몇이 그 모두를 넘어 쉼의 자리에서 신을 만나려 하지만, 그 역시 욕심이다. 무엇을 만나려는 것도 무엇이 되려는 것도 모두 사라진 바로 그 자리, 나는 온전히 하나의 있음,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 있는 자유가 된다.     


그 자유의 자리에서 나는 더는 나를 고집하지도 않는 자유를 누리며 쉬게 되리라.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온 것은 다른 산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결국 나의 자리를 찾아서다. 온전히 자유로만 있는 나의 자리 말이다. 


유지승 씀

2023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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