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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n 26. 2023

나와 너를 위한 토마스복음(도마복음) 읽어가기 3

희망은 당신의 안 그리고 밖에 ‘너’와 ‘우리’로 있다.

3. 희망은 당신의 안 그리고 밖에 ‘너’와 ‘우리’로 있다.      


3.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윗사람 가운데 봐라천국이 하늘에 있다라고 하면하늘을 나는 새가 당신보다 더 나을 테지요. ‘천국이 바다에 있다라고 하면물고기가 당신보다 나을 테지요천국은 당신 안에 그리고 밖에 있습니다당신이 당신 자신을 제대로 알 때당신은 알게 되었지만당신은 살아있는 아버지의 자녀란 것을 말입니다하지만 당신이 당신 자신을 모른다면항상 배고픔 속에 살게 될 겁니다당신 자신이 그냥 그대로 결핍이란 말입니다.”     


왜 불행할까? 왜 그리도 불안할까? 불행의 이유는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본의 세상, 모든 걸 자본으로 계산하는 세상, 만족은 자본주의의 적이다.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쌓고 쌓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남을 이기고 앞으로 가는 만큼 행복해지니 말이다. 만족을 모르고 달리지만, 우리 탐욕의 그릇은 무한하기에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괴롭다. 그러면서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 어려서부터 타인과 비교되며 살아온 삶의 슬픈 상흔이 박혀 이젠 스스로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을 당연시한다.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세상, 노력보다 항상 더 큰 탐욕 앞에 절망하며 자신의 불행을 당연시한다.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행복과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당연한 불행 앞에 항상 불안하다. 주변 사람은 항상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며 더 성공하라 하고, 더 착해지라 하고, 더 앞서 나아가라 한다. 지치고 지친 나에게 말이다. 언젠가부터 모든 이들이 두렵다. 불안하다. 저도 나를 조롱하지 않을까. 이도 나를 조롱하지 않을까. 웃고 있지만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상흔 속에서 이젠 자기를 향한 보호본능이 자신을 다른 이와 멀리하게 하고, 어느 순간 모두를 피해 홀로 불안해한다. 그러며 또 이 모두를 자신의 탓이라 자학(自虐)한다. 아니다. 당신의 탓이 아니다. 부조리한 이 세상과 이 부조리한 세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이런 세상이 계속되어 계속 누리며 살길 바라는 이들의 탓이다. 당신의 탓이 아니다.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니다. 진정한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숨기고 당신에게 모든 것을 돌려 버린 거다. 절대 자기 탓이라 하지 마라.    

  

저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저들은 우리 삶의 목적이 저 멀리 어느 곳에 있다며 우리를 그리로 가자고 한다. 좋은 말 같지만, 사실 지금 여기 우리 자리의 소중함을 잊게 만든다. 그들의 지시대로 살아가게 만든다. 한마디로 여전히 그들의 종으로 살게 만든다. 천국은 하늘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 바로 여기 살아 있는 나의 안에 있다. 내 안에 있지 않은 기쁨이 어찌 내 기쁨이며 나를 웃게 하겠는가. 참 행복과 참 희망 그리고 참 천국은 바로 여기 나에게 있다. 그리고 나의 밖, 여기 하나하나 홀로 있는 이들의 밖, 그것을 초월하여 있는 나와 너 모두를 품고 있는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 가운데 있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우리의 기쁨이고 행복이겠는가.      


나와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면, 부족을 모른다. 아픈 너를 보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쓰러진 나를 보면 너 역시 가만히 있지 않는다. 더불어 우리를 이루며 그곳이 신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내 안에 천국으로 웃지만 너는 너 안에 천국으로 웃는다. 그러나 너의 천국이 나에겐 기쁨이나 너의 천국은 너만의 천국이 아니라, 나의 천국이고 우리의 천국이다. 나 역시 너에게 그러하다.      


너의 밖만을 믿지 마라. 물론 너의 안만을 믿어서도 안 된다. 너의 밖만을 믿으면 너는 너를 부정하고 끌려다니는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고, 너의 안만을 믿게 되면, 너만이 홀로 진리라며 서서히 썩어가는 독이 될 것이다. 너의 안에 그리고 밖에 천국이 있다. 탐욕을 비워지는 너의 자리, 그 빈자리가 희망의 시작일 것이고, 그렇게 빈자리가 커지면 너의 탐욕으로 나를 보지 않아 나의 미소도 너의 미소가 될 것이다. 바로 더불어 있음이 천국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천국은 그렇게 바로 여기 우리로 있어야 한다.      


2023년 6월 26일

유지승 씀




2022년 화단에서 사진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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