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의 길, 나는 묻고 묻는다.

by 유대칠 자까

출가의 길, 나는 묻고 묻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지루해서 산에서 내려온 게 아니다. 싯다르타는 부유한 왕궁의 삶이 지겨워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 왕궁의 밖으로 나간 게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큰 도덕적 결단으로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내려가거나 밖으로 간 것도 아니다. 있을 자리를 찾아 내려가고 밖으로 간 거다. 산 위에 그리고 왕궁 안에 그의 자리가 아니라서 말이다. 사실 이를 깨우치는 게 출가의 시작이다.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니란 것을 깨우치는 것 말이다.


따져 물어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을 향해 묻고 물어야 한다. 정말 여기가 나의 자리인지 묻고 물어야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절대 자기 잘못을 탓하란 말이 아니다. 궁리하고 또 궁리하란 말이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이다. 지금 그 자리의 괴로움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 그렇게 아집에 가득 차 살아가는 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을 괴롭게 한 죄인이 아니라, 아집이 칭송받는 세상의 피해자일 뿐이다. 자기 탓을 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자.


싯다르타는 감성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집요한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의 이론은 면도날이다. 내 아집을 도려낼 면도날 말이다. 그 면도날을 들고 자신의 힘으로 날을 갈아 결국 자신의 힘으로 도려내야 한다. 그 과정이 묻고 묻는 거다. 물음, 그 회의(懷疑)는 감성의 일이 아니라, 이성의 일이다. 이성으로 따지는 거다. 지금 여기 나란 결과의 원인, 이 괴로움이란 결과의 원인을 따지고 또 따지고 또 따져야 한다. 그때 마주하는 아집들이 하나하나 도려내며 나는 나의 자리에 앉게 된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그 화가 어느 순간 그 화의 원인이 되어 이어진다. 처음의 이유는 사라지고 화가 또 화가 되고 그 화가 다시 화가 된다. 그렇게 화로 가득한 이가 된다. 따져 묻고 물으면 찾아오는 존재의 불안감, 상실의 불안감, 그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화를 내고 또 화를 낸다. 지금 같지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 지금 같은 미래일까에 대한 불안, 더 많이 얻지 못한 지금에 대한 불안, 더 잃을 것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 그 많은 불안이 자기 약점으로 적에게 보일까 봐 화를 내고 또 화를 낸다. 그 불안,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안, 어쩌면 이 세상은 원래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나의 노예가 아닌 이상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 것이니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음이 당연하고 오히려 그래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다. 생각이 온전히 내가 되는 이는 없다.

묻고 묻는다. 그러면 화내는 나도 안아주어야 할 불안에 떠는 초라한 무엇일 뿐이다. 무엇이 되려 애쓰는 서글픈 낙엽 말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우리 모두의 숙명인데 말이다. 그 사실이 그대로 나의 존재로 받을 때 나는 나의 자리에 앉게 된다. 화도 불안도 없이 그냥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앉게 된다. 자유란 바로 그 자리의 이름이다.


출가, 출가는 자유를 향한 여정이다. 그 여정은 묻고 물으며 이어진다.


유지승 씀

2023년 6월 24일

20220414_165027 봉정사.jpg 봉정사 2022년 사진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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