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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03. 2023

황금을 알아서 슬프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9

황금을 알아서 슬프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9     


나귀는 황금이 아니라 여물을 고를 겁니다.

νους σρματ᾽ ἂν λσθαι μλλον ἢ χρυσν.

(오누스 쉬르맛 안 헬레스타이 말론 에 크뤼손)

: Aristoteles, Ethica Nicomachea, X, 5, 1176 a7     


읽다:     


나귀는 황금을 모른다. 모르니 가질 수 없다. 가질 수 없으니 이것으로 다투지도 않는다. 우린 다르다. 우린 황금을 안다. 우리는 황금을 선택한다. 그러면 우린 나귀보다 행복한가? 황금같이 귀한 것도 모르는 그들보다 행복한가 말이다. 우린 저 들판의 얼룩말보다 행복한가? 황금을 아는 우리가 모르는 그들보다 행복한가. 자연 속에서 자연이 허락한 것에 만족하며 그 이상을 선택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거나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자연이고, 그 자연 가운데 선택하며 살아갈 뿐이다. 자연에 충실히.      


이미 배부른 동물은 필요 이상 먹지 않는다. 남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자신의 것을 감추어 보관할 창고를 마련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창고에 쌓아 둔 것을 팔아 자연에선 그저 돌에 지나지 않는 황금을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것을 더 구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는다. 자연에 없는 가치를 만들지도 않고 자연에 없는 가치로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냥 자연이 자연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배불러도 더 먹는다. 남보다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힘이다. 남보다 더 큰 차도 힘이고, 남보다 더 큰 집 역시 힘이다. 남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화려한 황금도 힘이다. 그 힘을 위해 싸우고 또 그 힘을 위해 창고를 만든다. 그렇게 자연에 없는 일을 한다. 자연에 없는 가치를 만들어 그것으로 서로 싸운다. 거짓도 황금을 위해서라면, 적당한 삶의 기술이 된다. 거짓도 기술이 되는 세상, 이미 서로 믿지 못함은 당연하다.      


사람은 그래서 슬프고 힘들다. 더는 배고프지 않아도 남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하니 슬프다.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보다 더 많이 자기를 꾸미지 못해 슬프다. 남이 자기보다 더 많은 걸 가지며 어쩌나 걱정하기에 슬프고 남이 자신이 자기 것을 빼앗아 갈까 불안하니 슬프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슬프고 남을 앞서지 못해 슬프다. 나도 나의 무능을 탓하며 믿지 못하니 나의 무능으로 나를 공격하고 조롱할 남을 믿지 못함은 당연하다. 그렇게 나와 남을 믿지 못하고 나로 살고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니 슬프다.      

황금을 아는 우리는 황금을 모르는 동물보다 불행하다. 끝없는 욕심에 지배당해 불행하고, 나의 황금을 보는 남의 시선에 지배당해 불행하다. 친구도 가족도 서로의 활용 가치를 계산하니 불행하다.      

지금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황금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유지승 씀

2023년 7월 3일 


[대구에서 독서 철학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철학사>와 <신성한 모독자>의 저자인 제가 직접 강의합니다. 철학책, 인문학책, 고전 등등 함께 읽고자 하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주부, 직장인 등등 모두 환영합니다. 문해력과  함께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될 겁니다. 문의 문자는 0i0-44i4-o262로 꼭 문자 먼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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