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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05. 2023

뱀이 허물을 벗듯이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2

뱀 허물을 벗듯이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2     


같은 강에 다시 발을 놓아도 우리에는 또 다른 물에 씻길 뿐입니다.

ποταμοσι τοσιν ατοσιν μβαίνουσιν τερα καὶ ἕτερα δατα πιρρε

(포타모이시 토이신 아우토이신 엠바이누:신 헤테라 카이 헤테라  휘다타 에피르레이)

L Didymus, in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XV,20     


읽다: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순 없다. 우린 찰나의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항상 변하고 있다.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변화이다. 없던 게 생겼으니 말이다. 이후 항상 변하고 있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우리 삶이란 우리의 변화 여정이다. 우리 자신만 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와 더불어 있는 모든 것이 변한다.      


열심히 키운 해바라기와 서너 종류의 꽃들이 모두 시들었다. 씨앗에서 시작해 싹이 나옴에 감사했고, 잎이 나옴에 기뻐했고, 꽃봉오리가 나옴에 신비했으며, 꽃이 필 때 너무나 행복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그 여정, 쉼 없이 새로워지는 그 여정이 참 신비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참 좋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모든 꽃이 시들더니 사라졌다. 또 다른 씨앗만을 남기고 말이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자리는 왠지 서글펐다. 마치 사라지는 청춘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말이다. 살다가 죽는 우리의 운명을 보는 듯하여 말이다. 그러나 그게 존재다. 존재한다는 말은 계속 멈추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변한다는 말이다. 씨앗이 싹이 되고 꽃이 되고 사라지고, 그 사라진 자리에 다시 씨앗은 싹이 되고 꽃이 되고 사라진다. 이렇게 변화하는 게 존재한다는 말이다. 존재한다는 말은 머물러 있다는 말이 아니다. 채우고 비우고 채우고 비움의 연속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게 사실 빈자리로 있기 때문이다. 고정되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빈 채로 있다. 빈자리에 한 번은 싹이 채우고 또 빈자리엔 꽃이 채우지만, 싹도 꽃도 영원하지 않다. 잠시의 채움일 뿐이다. 이것을 고집하면 안 된다. 자연은 고집으로 멈추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비우고 채우고 다시 비우고 채운다. 살고 죽고 살고 다시 죽는단 말이다.      

꽃이 사라진 자리를 아쉬워하는 나는 고집부리며 고집대로 되지 않아 아쉬워한 거다. 꽃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또 다른 생명이 들어설 수 있기에 말이다.      


아집은 뱀의 허물과 같다. 사라질 때 사라져야 한다. 벗어 버려야 한다. 벗지 않으면 그 허물이 감옥이 되어 나를 죽여갈 것이다. 우린 매번 허물을 벗으며 살아야 한다. 고정되지 않고 말이다. 어제 나를 씻은 물에 다시 씻을 수 없다. 나도 새로워졌고 흐르는 강물 역시 새로워졌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 나도 그리고 나와 더불어 있는 모든 것도 말이다. 그런데 사라짐을 아쉬워하며 영원함을 그리워한다면, 우린 끝없이 고집부리며 고집대로 절대 되지 않을 세상에서 우린 끝없이 괴로울 것이다. 나도 강물도 새로워졌다.   

   

이제 벗자. 뱀이 허물을 벗듯이. 그렇게 쉬지 않고 새로워지자. 


유지승 씀

2023년 7월 5일



바닷가 2022년 사진 유대칠 유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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